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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중양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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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동북아시아에 국가 간 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0세기 들어 동북아 전체가 전쟁상태로 빠져든 사건은 모두 일본에 귀책 사유가 있었다. 일본의 조선 강점과 중.일전쟁, 그 이후의 태평양전쟁은 모두 일본의 극우파 정치인과 군벌들의 잘못이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으로서 주변국에 저지른 죄악에 대한 충분한 사죄와 반성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이 공산화하고 남북이 분단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재빨리 아시아의 주도적 자유진영 국가의 일원이라는 타이틀을 따냈다.

이 때문에 자유진영에 속했던 한국 등 대다수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충분한 청산작업 이전에 강요된 화해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자신에 불리한 과거는 너무도 쉽게 잊으면서 냉전기의 우월적 지위를 영속화하려는 듯 주변국에 대한 공세적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지난 22일 평양에서 제2차 북.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동북아 정세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1차 정상회담의 결과가, 한달 후 납북자 문제를 거론한 일본 내 비난여론에 발목잡혀 1년8개월여를 허비한 것처럼 이번에도 정상회담 후 결과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은 비판 일색이다.

납치 의혹자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못한 채 식량지원을 약속했다는 납치 피해자 가족모임의 비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태를 종합적으로 보아야 할 일본의 언론과 책임있는 정치인까지 이를 기화로 북.일 정상회담의 모든 성과를 뒤집고, 북한 '두들겨 패기'를 위한 건수 잡기식 공격으로 이 문제를 활용하는 듯한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은 아시아의 주도적 국가로 정치력을 발휘해 지역안정과 평화 증진에도 기여해야 하며 그 핵심적 사안엔 북한과 일본 간의 국교 정상화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이 북한에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북.일 간에는 이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동북아에는 일본과 연관된 인권문제, 일본 제국주의의 폐해가 여전히 미해결인 채 상당수 존재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 해도 이를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뻔뻔한 야수적 양심에 분노하는 여론이 상당수다. 일본을 전범 재판장에 세우자는 국제여론에 대해선 외면하면서 일본은 왜 그렇게 매사를 편협하고, 자신에게 편리한 시각에서만 보려 하는가.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