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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골리앗에 다윗까지 겸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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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중국에 내릴 때마다 마음이 서럽다. 한반도의 40배, 남한의 100배나 되는 땅덩이 때문인데, 이번에도 또 들었다. 선양(瀋陽)에서 베이징(北京)까지 기차를 타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광경이 11시간 내내 옥수수밭뿐이라는 찬탄을. 어차피 골리앗 이웃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우리는 다윗의 재주라도 가져야 하는데, 여기 자꾸 자신이 없어져 서러움이 짙어지는지 모르겠다.

*** 해외투자 대국 된 중국의 전략

중국은 세계 5위의 해외 투자 대국이다. 일본을 밀쳤다. 그런데도 소금먹고 물켜듯 마구 외국인 투자를 빨아들이고 있다. 선양에 진출한 외국 기업으로서 한국의 투자 순위가 1위라는 인연 때문인지 지난 19일 '한국 주간' 행사가 열렸다. 투자지존(投資至尊) 구호가 번득이는 마천루 거리에 나서니 투자는 오히려 저들이 우리한테 해야 할 판 같았다. 그러나 속은 좀 달랐다. 해가 지면 불이 켜져야 하는데 어두운 빌딩들이 많았다. '사무실 임대'를 알리는 초상(招商) 현수막이 건물마다 어지럽고, 공사가 중단된 초대형 건물도 여럿이었다. 개혁.개방 학습 4반세기에 시장은 단단히 '거품'이 들었고, 그 거품 하나라도 줄이려고 미용실과 노래방 규모의 푼돈마저 외국인 투자 유치 명분으로 꾀어들이며 고마운 척하는 것인가. 쩨쩨한 골리앗이라고?

이튿날 삼보컴퓨터의 이용태 회장은 전혀 다른 골리앗을 소개했다. 멍석은 중국-한국CEO 경제 포럼이었지만 메시지는 그 자리의 한국 기업인을 향한 것이었다. 2000년 선양에 진출한 삼보는 첫해부터 흑자를 냈다. 말이 흑자지, 실은 시 정부가 베푼 각종 혜택의 산물이었으리라. 李회장은 중국 근로자의 임금이 국내 수준의 7분의 1 정도지만, 그것이 중국 진출과 성공의 이유는 아니라고 했다. 임금으로 따지면 베트남도 있고, 파키스탄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는 두 가지 경쟁력을 거론했다.

"먼저 공무원 경쟁력입니다." 인구 700만명으로 중국 다섯째 도시인 선양의 시장은 해외 여행을 즐길 만큼 한가하지 않지만 그래도 한해 한번씩은 서울에 온다. 고객 관리(!) 차원의 방문인데, 지난해 천정가오(陳政高)시장과는 이런 대화가 오갔단다.

"李회장, 삼보의 수출액이 얼마나 될 것 같소?"

"4억5000만달러 정도로 보는데요."

"아니오. 6억5000만달러는 될 것이오."

"…."

"당신은 석달에 한번씩 보고를 받지만,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당신 회사의 수출 상황을 보고받고 있소."

선양의 삼보전뇌(電腦)는 연말까지 6억달러어치를 수출했고, 이 도시의 내.외자 기업을 통틀어 수출 실적 1위였다. 陳시장은 본사를 선양으로 옮기면 어떠냐고 가끔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는데, 말투야 농반 진반이었겠지만 마음속도 그랬을까. 이게 골리앗이야 다윗이야? 가뜩이나 답답한 가슴에 李회장의 다음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국내 기업인 여러분. 혹시 정부 관리가 공장으로 찾아와 무슨 어려움 있습니까, 뭐 도와드릴 것 없습니까 하며 한번이라도 물어본 적 있습니까?"

"그리고 정책 경쟁력입니다." 중국은 2010년, 2020년, 2040년의 청사진이 벌써 나왔고 과거 예를 보면 대강 맞아 떨어진다고 했다. 한국도 정당이 있고 선거 때마다 정책을 내놓지만 5년 뒤, 10년 뒤 우리 경제의 좌표가 어떤 것인지 혹시 아는 사람 있느냐고 물었다. 장래에 대한 예측이 서야 기업이 투자에 나서는데 우리 정치는 대체 무얼 하고 앉았느냐는 자탄이었다. 공무원 경쟁력, 정치인 경쟁력, 그런 얘기 함부로 했다가는 살아남기(?) 힘들 텐데…. 괘씸죄에 걸리면 그대로 패가망신이니.

*** 임금보다 공무원 경쟁력 키워

그리고는 삼보도 잘못이 많다고 말머리를 돌렸다. 미국에 200만대나 수출하는 컴퓨터를 중국 시장에는 1만대도 못 판다는 것이었다. "우리 재주가 모자라는지, 중국 시장이 뚫기 어려운지, 양자 모두인지 그 원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물론 그 원인을 잘 알고 있고, 그 발언은 그 자리의 중국 인사들을 향한 것이었다. 팔매 하나로 골리앗을 눕히겠다고? 꿈 깨라고, 3000년 전 블레셋의 골리앗이 아니라니까! 그날 처음 만난 이용태 회장에게 나는 한 치의 유감도 없다. 그래서 말인데 이 글로 인해 행여 그가 누구한테 미움을 받는다면 참말로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정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