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의 미학, H-A-O-X 라인 코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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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호 11면

H, 남성적인 테일러링
올해는 날카롭게 단련된 남성복처럼 직선의 멋이 살아 있는 H라인의 테일러링 코트가 대세다. 디자이너들은 무미건조하고 묵직하지만 유연함과 우아함으로 곱게 포장된 재단을 완성하는 데 사력을 다한 것 같다. 이브 생 로랑의 스테파노 필라티는 엄격하기만 했던 테일러링에 낯선 볼륨감을 곁들인 남성스러운 룩을 선보였고, 질 샌더의 라프 시몬스는 수많은 절개선으로 가벼우면서도 여성적으로 진보된 재단을 보여 주는 등 많은 디자이너가 집착 아닌 집착으로 테일러링을 주류로 끌어올렸다.

대세인 테일러링 코트를 스타일링할 때 유념할 것은 ‘과유불급’. 될 수 있는 한 아이템의 개수를 줄여 담백한 분위기를 강조하자. 지나친 겹쳐 입기는 절대 피해야 한다. 원피스나 스커트를 매치할 때도 H라인 코트의 밑단처럼 깔끔하게 재단된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코트보다 너무 길거나 치렁치렁한 것은 금물. 코트보다 길이가 1인치 정도 긴 것이 가장 안정된 모습을 완성하는 길이다.

안에 받쳐 입는 소재가 두터우면 둔해 보이므로 이 점도 주의하자. 투박한 테일러링 코트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모노톤의 불투명 스타킹이 매치돼야 한다. 날렵한 하이힐보다는 묵직한 굽의 부티(발등 부분이 발목까지 덮는 구두)가 테일러링 코트의 매력을 부각시켜 준다. 코트 컬러와 동일 계열의 큰 가방까지 든다면 10점 만점의 센스 있는 테일러링 코트 룩이 완성된다.

A, 로맨틱한 볼륨감
그네의 움직임을 닮았다고 해서 ‘트라페즈’라고도 불리는 A라인 코트는 1950년대를 풍미했던 상류사회 여성을 떠올릴 만큼 고급스러우면서도 로맨틱한 아이템이다. 올해는 그네의 움직임이 더 높고 넓어진 듯하다. 코트 가장자리 선의 볼륨감과 풍성함을 한층 극대화하거나 가벼운 소재로 부피감을 줄인 것까지 다양한 트라페즈 실루엣의 A라인 코트가 선보이고 있다.

특히 래글런 소매(어깨가 따로 없이 깃에서 바로 팔이 이어지는 풍성한 소매)로 볼륨감과 곡선의 형태감을 살린 버버리 프로섬의 코트는 단연 돋보이는 아이템이다. 더치스 새틴, 울, 캐시미어 등의 고급스러운 소재를 바탕으로 발렌티노, 베르사체, 저스트 카발리 등의 디자이너 하우스에서도 부드러운 트라페즈 코트를 전개하고 있다.

A라인의 트라페즈 코트에 옷을 맞춰 입을 때는 코트 밑단의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리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스커트 밑단이 코트보다 길거나 팬츠의 다리통이 너무 넓어 헐렁해 보이는 것은 피해야 한다. 부티, 앵클부츠, 롱부츠 모두 무난히 소화될 수 있지만 날렵한 디자인의 하이힐은 필수. 특히 롱부츠는 종아리에 꼭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팬츠를 선택할 때는 버버리 프로섬의 크리스토퍼 베일리가 제안했듯 길고 가는 다리 라인을 연출하는 플레어드 팬츠(나팔 모양으로 주름이 잡혀 퍼지는)를 입어야 균형 있고 세련된 감각을 완성할 수 있다. 이때 반드시 하이힐을 신어야 하며, 팬츠는 하이힐의 앞코를 가릴 만큼 길이가 길어야 다리를 늘씬하게 연출할 수 있다.

O, 여유 있는 성숙미
XXL 사이즈가 난무하던 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O라인의 코쿤 실루엣 코트가 돋보이는 이유는 다른 어떤 라인의 코트보다 성숙한 분위기를 내기 때문이다. 덕분에 잔잔하고 매혹적인 O라인 코트들이 이번 겨울에는 많이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에는 단추의 흔적마저 철저히 삭제해 버린 디테일 ‘O’의 코쿤 실루엣(누에고치 같은)에 열중한 마크 제이콥스를 필두로 도나 카란 역시 앞 여밈 장치 없이 가운 스타일로 걸치는 편안하고 실용적인 캐시미어 코트들을 많이 선보였다. 이 코트들의 장점은 부드러운 곡선으로만 이루어진 우아함이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발렌시아가만의 미래 지향적인 형태에 코쿤 실루엣의 볼륨을 첨가시켜 현대 여성들이 원하는 바로 그것, 세련되면서도 똑 떨어지는 개성까지 더해진 고급스러운 코트들을 선보였다.

O자형의 코쿤 실루엣 코트를 스타일링할 때는 안에 받쳐 입는 옷의 소재에 신경 써야 한다. 특유의 O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조직이 두터운 소재를 사용한 코트가 둔탁해 보일 수 있으므로 코트 안의 옷들은 실크, 새틴, 시폰 등의 유연한 소재들을 선택하는 게 좋다.

기본 셔츠, H라인 스커트, 타이트한 터틀넥 스웨터 등 고전적인 아이템을 이용해 몸의 라인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정돈된 느낌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블랙 스타킹에 별다른 장식 없는 깔끔한 디자인의 하이힐을 신는다면 절제된 섹시미를 연출할 수도 있다. 단, 롱부츠만은 자제하자. O라인의 좁은 밑단과 롱부츠가 만나면 몸을 무릎에서 2등분하는 결과만 난다.

X, 우아한 실루엣
X라인 실루엣을 완성시키는 벨티드 코트(허리 부분을 벨트로 매는 코트)는 매 시즌 거론될 만큼 실용적인 기본 아이템이다. 이번 시즌 역시 뉴욕~밀라노~파리를 거쳐 거의 모든 컬렉션에 등장한 벨티드 코트는 절제된 단순한 디자인에 벨트의 다양화로만 포인트를 준 것이 특징이다. 과거의 벨트들이 코트를 만들고 난 자투리로 만든 듯 보였다면 올해는 코트만을 위해 새롭게 제작되었지만 다른 어떤 룩에도 무난히 사용될 수 있는 ‘제대로’ 된 벨트가 많이 등장했다.

또한 단추를 숨기거나 생략해 벨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점도 특징이다. 보테가 베네타에서는 폭이 좁은 가는 금속 벨트를, 마르니에서는 투박한 브라운 가죽 벨트를, 일찍이 벨트로 한몫 잡아온 펜디는 크고 굵은 블랙 벨트를 사용해 X라인의 벨티드 코트 룩을 완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벨티드 코트 X라인의 장점은 아름다운 몸매를 강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팬츠보다는 스커트를 매치하는 것이 좋다. 특히 무릎 아래로 오는 미디 길이의 스커트가 복고적이면서도 성숙한 분위기의 벨티드 코트 룩을 완성시키는 베스트 아이템이다. 실크 스카프를 자연스럽게 걸치거나 혹은 큰 리본을 만들어 목에 매어 주면 복고풍의 여성스러운 느낌을 더욱 강조할 수 있다.

발끝까지 오는 길이의 맥시스커트를 함께 입는다면 우아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 단, 플리츠·개더·볼륨·미니스커트 등은 벨티드 코트 스타일링에서는 지양해야 하는 아이템이다. 미디나 맥시스커트를 선택했을 때는 스커트의 밑단보다 길이가 더 올라가는 롱부츠를, 납작한 것보다는 굽이 있는 것을 선택해야 전체적으로 길고 가는 실루엣을 연출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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