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제 4076개 없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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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산간 벽지에서도 길을 내려면 반드시 중앙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방에 있는 보육원이 시설을 바꾸거나 노인 요양원이 인력을 늘릴 때도 도쿄로 달려가 국가 공무원의 도장을 받아 와야 한다. 일본 정부가 이 같은 시대착오적인 규제가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의 장애물이 된다고 판단해 대대적으로 손질하기로 했다고 일 언론들이 3일 보도했다.

일본 지방분권개혁추진위원회(분권위)는 2일 뜯어고치거나 폐지할 필요가 있는 정부 법령 4076개를 선정하고 8일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에게 보고키로 했다. 중앙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고 있는 1만57개 규제의 40%에 달하는 규모다. 일본 정부는 또 21만 명이 근무하는 정부의 지방출장기관 가운데 지방 업무와 겹치는 기능은 대폭 축소키로 했다.

정부 부처들은 즉각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아소 총리는 “재임 중 국민 생활을 불편하게 하고 지역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규제는 과감하게 고치겠다. 중앙에서 지방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전하겠다”고 밝혀 왔기 때문에 강력한 규제완화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1955년 자민당 정권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규제 완화가 추진되는 것이다.

아소 총리가 전향적인 이유는 올 초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은 전봇대 한 개도 옮기기 힘든 나라”라고 지적한 것처럼 일본에서도 각종 행정 규제가 국가 경쟁력을 갈수록 떨어뜨리는 핵심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권 타도를 외치는 제1야당 민주당도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면 초당적으로 협력할 방침이다.

도마에 올려진 규제 4076건은 국민 생활 곳곳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니와 우이치로(丹羽宇一郞) 분권위 위원장은 대표적인 사례로 공영주택 입주 자격을 꼽았다. 입주 자격을 ‘친족과의 거주’와 ‘월 수입 20만 엔 이하 주민’으로 일률적으로 규제하고 있어서 지방자치단체들은 독자적인 주택정책을 펴지 못하고 있다. 도로 규제도 심각해 2차선 이상에선 2m 이상의 폭이 의무화돼 있고, 자전거 길도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 또 필요 이상으로 도로를 뚫거나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후쿠오카(福岡)현 관계자는 “도로를 내기 위해 국토교통성에 승인을 요청했는데 6개월이 걸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국가 규제는 두 살배기 미만의 어린이에게도 미치고 있다. 보육원은 2세 미만 어린이에 대해선 의무적으로 1인당 3.3㎡의 별도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지방에선 이런 시설을 갖추기 어려워 2세 미만 어린이를 받지 않는 보육원이 적지 않다. 노인 요양원 등 복지시설도 최소 근무 인원 규제로 인해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도쿄= 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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