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안 되는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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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8강전>
○·야마시타 9단(일본) ●·쿵 제 7단(중국)

제7보(88~106)=수상전엔 한 수 부족, 계가하면 반집 패. 대단히 재수 없는 경우를 말하는 것 같지만 바둑이란 게 원래 ‘딱 한 수 차이’로 판가름나게 돼 있는 게임이다. 대개의 비극은 ‘엷음’에서 시작된다. 수상전이건 계가건 판이 엷어지면 죽을 힘을 다해 버텨도 한 수 부족에 걸리거나 반집을 지게 된다. ‘두터운 반집’이란 프로들의 용어도 비슷한 의미다. 눈 터지게 미세해 보이지만 반집은 확실히 남는, 그래서 질 수 없는 바둑이란 뜻이다.

90에서 시작된 최후의 결전이 바로 그 양상이다. 쿵제 7단이 91로 차단하자 백은 바로 한 수의 벽에 가로막힌다. ‘참고도’ 백1로 나가 3으로 끊을 수 있어야 바둑이다. 이 수만 통하면 흑을 단박에 거덜낼 수 있다. 그러나 흑4에서 다음이 안 보인다. 백5가 기막힌 수 같지만 흑은 한 점을 내주고 대마를 살려오면 된다. 백은 A로 나가 끊을 수 없고(끊으면 백이 촉촉수에 걸려든다) 아무 소득 없이 5점만 잃게 된다. 수순을 이리저리 비틀어 봐야 교묘하게 안 되는 기구한 운명이다(※참고로 한 가지 수가 안 되면 대개 다른 수도 안 된다).

94로 나간 것은 그나마 최선의 타협책. 100까지 대단한 소득을 올렸다. 그러나 백△ 5점은 그냥 5점이 아니라 무려 25집이나 되는 준 대마. 선수를 쥔 백이 반상 최대의 105마저 차지하자 차이는 크게 벌어졌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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