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다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다불
정찬주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272쪽, 8500원

소설가 정찬주(51)씨의 새 장편소설 『다불』은 말 그대로 차(茶)와 부처(佛)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후반부에 차와 부처의 상관 관계를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대목이 나온다. 불가(佛家)의 수행자는 술을 마시면 망하고 차를 마시면 흥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차는 곧 수행이라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일이 수행인 이유는 ‘잠겨있지 않고 깨어서, 한 곳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두루 살펴보는 성찰’을 삼매(三昧)라고 할 때 차와 참선은 다같이 삼매에 들 수 있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달마 선사가 소림굴에서 9년의 면벽 수행 도중 졸음을 쫓기 위해 뽑아 던진 눈썹이 다음 날 차나무로 변해 있었다는 일화도 소개된다.

다시 차와 부처를 붙여 읽으면 다불은 차 마시는 부처, 차로 깨달음을 얻은 차의 부처가 된다. 구체적으로는 통일신라 성덕왕 때인 696년 왕족 혹은 왕자로 태어나 권력의 무상함을 깨닫고 삭발 출가한 뒤 당나라로 건너가 구화산을 중국 4대 불교 명산으로 만든 등신불 김지장(金地藏) 스님을 가리킨다.

소설은 2년 전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내가 결혼기념일이 돌아오자 생전에 아내가 즐겨 찾던 대원사에 기도 드리러 갔다가 신라승 지장의 중국 내 행적을 따라가 보기로 결심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나의 중국행은 아내를 대신해 지장 등신불을 친견(親見)하는 것이 아내의 영혼을 편케 해주리라는 기대, 그리고 지장이 신라 차를 중국에 전해 준 과정을 확인하려는 두 가지 목적에서 이뤄졌다. 식품연구소에 근무하는 박사 학위 소지자인 나는 마침 연구소에서 차에 관한 연구를 준비 중이어서 지장의 ‘차종자 수출’에 흥미를 느낀다. 여행에 나를 끼워 준 대원사 주지 고현 스님은 ‘1200년이 지나면 조국에서 나를 찾을 것’이라는 지장 스님의 유언에 따라 지장의 존상을 국내로 모셔오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구화산을 찾는 길이었다.

역사적 사실로 확인되는 신라인 지장의 업적이 우선 관심거리다. 794년 99세의 나이에 세상을 뜬 지장은 불교를 신라에 건네 준 중국 본토에서 오히려 지장왕보살로 추앙받았고 오늘날에도 해마다 70여만 중국 불교 신자의 참배를 받는 인물이다. 차도 그가 중국에 되수출한 것이다. 구화산 일대의 차종자는 지장의 이름을 따 금지차(金地茶)로 불린다. 시선(詩仙) 이백은 지장을 찬양하는 시 ‘지장보살 찬’을 남겼고, 당 숙종은 황제의 옥새나 다름없는 신표인 ‘지장이성금인(地藏利成金印)’을 하사했다.

소설은 1200년 전 지장의 행적과 그 행적을 추적하는 나와 고현 스님의 현재의 여정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첫사랑을 갈라놓은 신분제도인 골품제와 권력 다툼에 환멸을 느껴 출가한 과정, 목숨을 잃을만큼 치열했던 좌선, 구화산을 지장신앙의 본산으로 만들기까지의 경위 등 지장의 일대기가 차츰 드러난다.

저자 정씨는 사료에 단편적으로 존재할 뿐인 지장의 일대기를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해박한 불교 지식과 현장 답사를 통해 얻은 생생한 정보, 작가적 상상력 등을 동원했다. 반면 사건의 나열에 치중하다 보니 지장의 내면이 다소 밋밋해진 점, 차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이 상대적으로 적은 점이 아쉽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