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파문>이철수 전제일은행장 당했나 이용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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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보 게이트'의혹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철수(李喆洙)전제일은행장은 단순히 외압에 의해 그 많은 돈을 한보에 지원해 준 것일까,아니면 은행장이 잘못해 정태수(鄭泰守)씨에게 당한 것인가. 계속 입을 다물어 왔던 李전행장은 지난달 30일 재구속에앞서 비로소 주목할 만한 발언 한 마디를 했다.“위에서 전화가오면 일단.예예'하고 전화를 끊는다.그리고는 해줄 만한 것은 해주고 도저히 안되는 것은 해주지 않는다.” 금융 계에 청탁이많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고,청탁이 오면 가려 가며 해준다는 얘기다. 李행장은 박기진(朴基鎭)행장이 문민초기 사정한파로 밀려난 93년5월 행장에 올랐다.만회를 위해 李행장이 뽑아든 카드가.종합금융그룹화'정책.94년2월 상업은행이 내놓은 상업증권(현 일은증권)을 시가보다 1천억원이나 비싼 3천5백억원 에 사들여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상업은행 관계자들조차 2천억원에 팔면족하다고 생각하던 터였으므로 자신들로서도 제일은행측의 태도가 너무 뜻밖이었다는 것이다.이때도 李행장의 경영스타일에 대해 행내 반발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은행이 한보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97억원의 회사채 지급보증을 한 93년11월부터.이를 시발점으로 94년 무슨 영문인지 무려 5천억원의 여신이 나갔다.재구속 직전 李행장은“당시 한보는 은행들이 서로 돈을 빌려 주려고 경쟁이 붙을 정도로 전망이 밝은 기업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93년까지 여신이 가장 많았던 서울은행은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다.“우리 은행의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데다 당진제철소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판단 아래 거래를 줄여 나갔다”는 것이 서울은행측의 설명이다. 그 이후 제일은행과 한보의 관계는 더욱 밀착됐다.결정적인 계기는 4천3백억원의 은행부채를 안고 부도를 낸 유원건설의 인수.인수발표 당일 李행장은“갑자기 왜 한보냐”는 질문에“한달반 동안 충분히 협의해 왔다”고 말했지만 제일은행 실 무진도 의아해했다.“그날 오전까지만 해도 대성산업과 막바지 인수협상을 벌일 정도로 한보에 대해 잘 몰랐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증언이다. 이에 대해 李행장은 재구속 직전“대성산업이 자산 실사후 본계약을 하자고 고집해 진전이 없었는데 한보가 모든 조건을 받아들일 테니 바로 본계약을 하자고 전격 제의해 와 수락했다”고 설명했다.한 건 했다고 생각했던지 李행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을 일부러 불러“鄭총회장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더라”고 입이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러나 한보가 기울기 시작하자 李행장은 다른 은행들을 한보문제에 끌어들이려고 백방으로 애를 썼다.재구속 직전 李행장도“은행들이 공동으로 지원해야지 혼자 할 수는 없다는 점을 늘 강조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아무튼 외압여부를 떠나 주거래은행 자신이 취한 태도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너무 많다는 것이 금융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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