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세이집 3탄 낸 배/두/나

중앙일보

입력

배두나의 놀이여행이 종착역에 도착했다. 생판 낯선 런던. 가까운 듯 이질적인 도쿄를 거쳐, 이번엔 세계 어느 도시보다 애착을 느낀다는 서울 구석구석을 누볐다. 서울놀이의 여정 역시 사진에세이의 틀을 갖춰 책으로 엮었다. 책 속에서 그녀는 시종일관 말을 건다. “논다는 건 생각보다 쉬워.나가서 재밌게 놀아봐!”

배두나는 독특하다. 도통한 듯 감을 잡을 수 없는 무표정 속에 오만 색깔을 드러낸다. 이런 오묘한 매력이 그녀를 트렌드 아이콘 반열에 올렸음 직하다. 독특한 그녀, 서울과 어떻게 놀았을까. 사진에세이집 제 3탄인 『두나s 서울놀이』엔 아날로그적 감성이 오롯이 배어있다.

오로지 그녀가 좋아하는 것만 담았다는 이 책엔 36.5도의 온기가 느껴지고 사람 내음이 폴폴 날린다. 우리 시대 아이콘의 개인 취미부터 돌돌이 안경을 쓴 사소한 일상을 따라잡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피사체로서의 배두나에 눈길이 가는 것 못잖게 그녀의 렌즈가 잡은 피사체 또한 예사롭지 않다. 애착과 정성의 힘일까. 어릴 적에 살던 삼청동, 살 부딪힘이 정겨운 재래시장, 산 좋고 물 맑은 백사실 계곡…. 평소 무심결에 지났던 서울의 속살이 톡톡 터지며 그녀의 감성과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얼리어댑터
배두나의 감성은 아날로그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얼리어댑터다. 새로운 게 나오면 안 써보곤 못배기는 ‘호기심 천국’이다.“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기보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게다가 마음이 끌리면 책으로 독파해내고 마는 행동파다. 책꽂이에 빼곡한 포토샵·꽃·제과제빵·사진집 자습서는 그녀가 도전해온 이력의 흔적들이다. 한번 빠지면 오달지게 파고드는 버릇때문에 오타쿠(매니어보다 더 심취해 있는사람)라는 말까지 들었다.

아날로그 감성이든, 얼리어댑터 본능이든, 그녀의 모든 것은 놀이로 통한다. 그녀는 배운 걸 노는 데 참 잘 써먹는 사람이다. “자랑하려고 책 낸 건 결코 아니에요. 책에 나온 것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놀이죠. 사진을 찍거나 산책을 하면서, 저처럼 놀아보라고 청하는 거죠. 서울놀이도 마찬가지에요. ‘서울을 다르게 보면 되게 기분 좋아. 나가서 나처럼 놀아봐라고요.” 말마따나 배두나의 놀이법은 간단하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오케이다. “돈 들이면서 노는 거 싫어해요. 마음만 있다면 돈 없이도 뭐든지 할 수 있는걸요.”

두근두근, 행복한 놀이 전도사
그녀에겐 한강에서 찍은 일출이 두고두고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새벽 세 시 반, 해뜨는 장면을 색깔별로 찍어보겠다며 슬라이드 필름과 낚시의자를 챙겨 한남대교로 갔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10분마다 셔터를 눌렀어요. 나중엔 배가 고파 자장면 집에 배달을 시켰어요. 남단에서 북단 방향중간쯤으로 배달해주세요, 라고요. 하하.”

일출을 다 찍고 나니 오전 8시. 내친김에 자전거로 명동 나들이에 나섰다. “한적한 명동거리 본 적 있으세요? 왠지 감동이에요.”그녀의 놀이엔 경계가 없다. 심지어 여의도 한복판에서 상자를 엎어 노점을 차리고 다방커피도 팔아봤다. 30분 만에 쫓겨나긴 했지만 700원짜리 커피를 1만7000원 어치나 팔았다고 좋아한다. 장롱 속 교복을 꺼내 입고 모교를 찾아가 사진을 찍고 논적도 있다.“신나는 일을 할 때는 왠지 마음이 들뜨잖아요. 제 놀이가 사람들을 마구 들뜨게 하면 좋겠어요.” 자신이 소개한 가게에 사람들이 모이고, 자신이 노는 장소를 사람들이 찾을 때 배두나는 뿌듯하다. 하지만 놀이 전도사로서 책임도 느낀다. “책과 영화는 돈을 내고 보는 문화잖아요. 죽어서도 남는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신중해져요. 영화 한 편을 끝낼 때처럼, 책을 낼 때마다 책임감이 강해져요.” 어깨는 무겁지만, 행복한 부담이다.

프리미엄 이세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