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프로입문 길 넓혀야 바둑계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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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이창호를 꿈꾸는 꿈나무들. 그러나 프로의 길이 너무 험하고 멀어 입문도 못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기원 제공]

프로기사가 되는 길이 너무 어렵다. 프로 고단자의 실력을 갖췄음에도 입단의 지옥문 앞에서 피 튀기는 경합을 벌이다가 탈락의 눈물을 삼키는 일이 비일비재다.

한국기원은 곧잘 "고시보다 어려운 등용문"이라며 자랑해 왔으나 지금은 이것이 바둑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프로 지망생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지나치게 어려운 입문 과정이 바둑 지망생들을 야금야금 줄어들게 만들고 있고 이것이 바둑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바둑계에서도 드디어 문을 넓히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 연구생들 실력은 프로

지금은 아마 바둑계에서 활동하는 K씨는 12명이 풀리그로 겨루는 입단대회 최종 본선에서 9승2패를 하고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곳 본선에 오를 정도면 당장 프로생활을 시작해도 절반의 승률은 무난한 실력자들이다.

K씨는 그 후에도 몇번이나 입단의 코앞에서 좌절한 끝에 결국 만18세라는 나이제한에 걸려 한국기원 연구생에서 축출됐다. 한국기원의 엘리트 코스인 연구생에서 떠나면 입단의 문은 더욱 좁아진다. 군입대를 앞둔 K씨는 올해 마지막 입단 도전을 위해 땀을 쏟고있지만 전망은 어둡다.

그는 일곱살 때 바둑교실에서 바둑을 배웠고 실력이 높아지자 유명 도장으로 옮겨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10조부터 1조까지 있는 한국기원 120명 연구생의 한명으로 뽑혀 드디어 1조(12명)까지 올라간 것은 15세 때. 연구생 1조라면 프로9단도 두려워하는 실력파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몇년이나 애썼으나 입단의 문은 돌파할 수 없었다.

*** 지망 청소년 점점 줄어

1954년 시작된 프로입단대회는 초창기엔 매년 남자만 4명꼴로 뽑다가 점차 늘어나 지금은 매년 9명을 선발한다. 하지만 이중 2명은 여성이고 1명은 지방에서만 뽑으니까 공개경쟁에서 선발되는 남자 프로의 수는 실제 6명이란 얘기가 된다. 50년간 이렇게 변하지 않은 곳은 참으로 드물 것이다. 현재 한국기원 프로기사는 지난주 선발된 2명을 합해 198명이다.

바둑이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종목인데 프로입문 코스가 이토록 난해한 까닭에 청소년들의 접근을 점점 어렵게 하고 있다. 프로세계란 자격증 사회가 아닌 실력대결의 사회다. 누구나 들어와 실력을 겨룰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발전한다. 그러나 과거 어렵게 지옥문을 통과한 프로기사들은 이제 와서 새삼 문을 넓히자는 주장이 별로 달갑지 않고 억울하기까지 하다. 이곳에서도 기득권과 원칙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 '자격증'보다 실력 대결

프로기사가 되면 은퇴하지 않는 한 나이나 실력에 상관없이 모든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입단이란 죽을 때까지의 참가 자격증과도 같다. 이점도 프로의 문을 넓히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호 확대의 원칙론은 프로기사들 사이에서도 점차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엘리트 위주로 실력을 키워 세계 1등이 된 한국 바둑이 이제 대중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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