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연락사무소 개설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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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잠수함 침투사태가 북한의 사과로 일단락되면서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양국간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빠르면 3월,늦어도 9월안에는 양국 수도에 사무소개설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북한이 김정일(金正日)의 공식적인 권력 승계와 연락사무소 개설을 연계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그러나 올 상반기 개설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게 관계전 문가들의 분석이다.기술적 문제들에 대한 양국간 이견이 거의 모두 해소됐다지만 부지선정.계약.수리등에 6개월정도는 소요될 것으로 보이기때문이다.
조기개설의 관측은 정상적인 연락사무소 개설 이전에 선발대 형식의 파견관을 양국이 교환 상주시키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이다.정식 사무소 개설 준비과정을 더욱 충실히 하면서 실질적인 업무수행도 가능하며 북한이 김정일의 당 총서기직 승 계 시점에 그의 외교적 업적으로 선전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국무부의 마크 민턴 한국과장은 얼마전 이같은 방안을 미국이 제의해 비공식적으로 북한과 논의중이라는 사실을 밝힌바 있다.어쨌든 올해안에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가 개설되리라는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연락사무소는 양국관계 정상화과정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창구개설을 뜻한다.
지난 88년 베이징(北京)대사관의 정무참사관 접촉으로 시작된양국간 직접접촉이 9년여만에 사실상의 외교관계 수립으로 이어지게된 셈이다.
양국은 연락사무소 개설의 필요성을 절감해왔다.북한은 탈냉전시대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으로 궁지에 몰린체제에 활로를 터주려는 계산이다.물론 서방세계 문물이 침투하는불가피한 역작용에 대한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 다.
그러나 남한의 흡수통일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경제회생의 길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최후의 선택이다.그러나 북한은 유엔대표부로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했기 때문에 연락사무소 개설에는 미온적이었다.그러던 북한의 태도는 지난해 봄 미국 주도로 재개된 대북식량지원 이후 반전되었다.외교부 박석균 미주담당 부국장과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한성열 공사가 미 워싱턴을 방문해사무소건물을 직접 물색하고 돌아가기도 했다.식량난 해소와 외자유치를 위해서는 미국의 협력이 더욱 필요해졌으며 언제까지 부담을 의식해 대미 직접창구개설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북한 지도부를 설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대북 핵협상과정에서 노정된 남북한간의 신경전,심각한 식량난으로 인한 북한 내부사정의 악화,잠수함 사태이후 남북한간의 무력충돌 가능성등을 감지한뒤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남북 당사자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지 오로 다.93년 봄 북한 핵문제가 막 터져나온 시점에 서울을 방문했던 피터 타노프 국무차관 일행은 북.미연락사무소 개설의 필요성을 역설한바있다.즉“불투명한 북한의 장래를 염두에 둘때 평양에 미국관리들을 상주시켜 직접 정세를 파악할 필요 가 있으며 만일의 경우 북한 고위지도부에 미측의 입장을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미국인들의 방북이 부쩍 늘어나 영사업무를 담당할 현지사무소 개설의 현실적 필요성이 점차 늘어간다는 점도 지적됐다.
연락사무소 개설을 둘러싼 양측간의 협상에서 이견을 보여온 것으로 알려진 외교행낭.평양주재 미 외교관들의 판문점을 통한 소통이나,워싱턴 주재 북한사무소에 대한 미측의 재정지원등은 사실상 중대 장애는 아니었다.미국은 외교관과 행낭의 판문점통과가 전례가 돼 타국도 요구할 수 있다는 설명에 더이상 이의를 달지않았고 북한도 자국의 연락사무소를 미측의 재정부담으로 개설하는게 합당치 않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으로서 가장 부담스러운 대목은 한국정부의 입장이다.
한국이 반대할 명분도 없지만 미국도 한국의 반대를 무리하게 무릅쓰고 개설을 서두를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 국무부 관리들은 한국이 지난해 봄 총선을 앞둔 시점에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선거를 또다시 앞세워 개설을 연기해달라는 논리는 더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이번 기회에 반드시 연락사무소 개설을 매듭짓겠 다는 의지의표현이다.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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