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화해의 계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한주일은 한마디로 빌 클린턴의 날들이었다.50년만에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던 월요일까지 워싱턴시내에선 각종 행사들이 열렸다.행사의 주제는.21세기로의 가교(架橋)'였고 집권2기를 맞는 클린턴의 메시지도 마찬 가지다.지난해 선거기간중 강조했던 메시지의 연속이다.한세기가 바뀌는 시점에 대통령직에 머무를 클린턴으로서 21세기를 부각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과 힐러리에게 연관된 각종 스캔들과 비전이 결여된 대통령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은 역사에 이름남길 대통령을 꿈꾼다.그래서 클린턴이 요즘들어 특별히 강조하는 주제는.화해(和解)'에 있다.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의 윤리문제로 워싱턴이 한창 시끄러울 때 클린턴은 공화당과의 화해를 내세웠고 취임사에서도 이를 되풀이했다.결국 입장다른 이들과의 화해없이 역사속에 이름남기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아닐까 싶다.미국처럼 의견절충이 제도화돼 있는 곳에서도 화해의 정신없 이 문제해결은 쉽지 않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편 21세기와의 가교를 내세우며 미래를 준비하는 희망어린 노력이야말로 현재로선 어렵게만 느껴지는 화해를 용이하게 만드는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돌파구가 안보이는 우리 현실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화해가 아닐까.
나라의 경제사정이 심각해 노동관계법을 개정하고 사회혼란을 우려해 안기부법도 고쳤다지만 사태를 안정시키는데는 의견다른 이들과의 대화가 불가피하다.실제 고통받는 이들의 처지는 제쳐둔채 어려운 사태를 선거를 앞둔 정파(政派)들의 입지확 보에 이용하려는 구태의연한 자세는 결코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 아니다.
미래는 변화를 요구하고 더욱이 .세기의 변화'를 앞둔 마당에과거와 다른 모습,새로운 생각으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노사갈등이 나라안의 골칫거리라면 남북관계는 정녕 한민족의 장래를 결정할 중대사 가운데 중대사다.
남북한간 대결의식으로 길들여진 우리의 굳은 사고방식을 깨는 고통스런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이념적 갈등을 극복하고 바쁜 걸음으로 미래를 향하는 국제사회에 동참할 수 없다.
.잘나가는 나라'대통령의 취임식을 흥미롭게 보았다.취임사의 수많은 수사(修辭)들 가운데 유난히 화해의 메시지가 눈에 띄는것은 어지러운 우리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21세기가 먼 훗날처럼 느껴지는 우리 현실이지만 화해가 미래를 준비하 는 가장 효험있는 해법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우리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이미 지적하지 않았던가.
길정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