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DMZ의 황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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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들의 세상엔 남북이 없다.” 새들의 생태를 연구하는데 평생을 바친 조류학자 원병오(元炳旿)교수가 마치 주술(呪術)처럼이 말 속에 깊이 빠져든 것은 65년이었다.6.25전쟁이 발발하던 해인 50년 12월초 유엔군을 따라 남하해 살면서 15년간 부모님 소식을 듣지 못해 애태우던 그에게 생존소식을 전해준것이 여름철새인 북방쇠찌르레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元교수는 홍릉임업시험장에서 잡은 쇠찌르레기의 이동경로를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밝힌 일제(日製)알루미늄 표지 가락지를 그 새의 다리에 매달아 날려보냈다.한데 북으로 날아간 이 새는 우연찮게도 당시 북한 과학원 생물학연구 소장이던 그의아버지에 의해 잡혔고,그가 도쿄(東京)의 국제조류학회에 조회하는 과정에서 이들 부자는 서로의 생존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 사실은 얼마후 외국신문들에 의해 보도돼 널리 알려졌고,그뒤 72년의 남북적십자회담에서도 공개됐다.
이 일화가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이산가족은 물론,우리 민족 모두에게 감동적인 일로 전해졌던 까닭은 거리상으론 바로 지척인데도 민간차원에선 남북간의 어떤 접촉도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이를테면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을 미물(微物)인 새가 해냈다는.우화적(寓話的)상징성'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현실성보다는 상징성에 오히려 비중을 두려는 것,그것이 바로 분단반세기를 넘어선 남북관계다.한강하류의 비무장지대에 있는 작은 섬 유도(留島)에 고립돼 있는 황소에도.元교수의 새'와 같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지난해 7월 중부지 역 홍수때 떠내려온 두마리중 살아남은 한마리다.김포군이 자연방목장을 조성해 보호하려 하자 환경부는 희귀 조류서식지를 파괴한다고반대했다.그 틈바구니에서도 이 황소는 유유자적하게 풀뜯는 모습을 TV카메라에 나타냈다.
.동물의 세상에 남북이 있을리 없으니'이 황소엔 먹이만 충분하다면 오히려 그곳에서 그냥 살게 하는 것이 자유로울는지도 모른다.하지만 관계당국은 협의끝에 이 황소를 뭍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한다.삶의 터전을 바꾸게 된 황소가 남쪽과 북쪽,그리고유도에서의 삶을 비교한다면 어디에서 가장.행복'했다고 느낄는지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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