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더…기쁨더…] “아이 키우면 세금도 확 줄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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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였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출산 장려 정책이 10여 년 만에 저출산 문화를 확 바꿔놓았다. 출산율이 2명 내외로 유럽에서 2년째 출산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가 어떻게 저출산 문제를 극복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파리와 그 인근 지역에 사는 30, 40대 부부를 취재했다.

◆월 30만원대에 육아·가사 도우미까지=파리 13구에 사는 이진희(43)씨가 지난달 29일 퇴근 후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쯤. 12년 전 유학생으로 프랑스에 온 이씨는 프랑스인 크리스토프 로뷰숑(48)과 2000년 결혼했다. 이씨가 집에 들어서자 두 딸 아나스타지(6)·아델라이드(22개월)가 육아 도우미와 함께 그를 맞는다. 남편 로뷰숑은 고등학교 철학 교사다.

이씨 부부가 출근을 하는 시간인 오전 8시쯤에는 시에서 고용한 도우미가 집으로 온다. 막내를 유아방에 보내봤지만 집에서 돌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얼마 전부터 도우미를 쓰고 있다. 도우미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막내를 봐주고 큰딸을 학교에서 데려오는 일을 한다. 그 밖에 다림질과 청소, 간단한 요리 등 집안일도 돕는다.

도우미에게 주는 돈은 한 달에 1500유로(약 260만원). 이 가운데 탁아시설 이용료로 시가 400유로를 보조해준다. 1100유로 가운데 절반은 연말정산에서 돌려받는다. 아이 둘을 봐주고 집안일까지 해주는 데 대해 이씨가 실제 부담하는 것은 550유로다. 로뷰숑은 “가족수당과 출산수당 등 정부보조금을 감안하면 월 250유로 정도만 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파리 외곽 도시인 콜롱브에 사는 크리스틴 블로(39)는 16년째 정보기술(IT)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연봉 등을 고려해 몇 차례 전직을 하기는 했지만 한 번도 일을 그만둔 적은 없다. 블로에게는 두 딸 잔(9)·리즈(5)가 있다. 블로가 두 아이 몫으로 정부에서 지원받는 돈은 매월 600유로(약 100만원) 정도다. 세제 혜택과 각종 수당이다. 블로는 "젊은 부부들에게 세제 혜택은 특히 매력적”이라고 했다.

그는 “연봉에서 40%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데 이를 돌려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고 했다. 블로는 딸의 방과 후 활동비와 주말 발레 레슨비, 베이비시터 이용료 등의 50%를 환급받는다. 특히 믿을 수 있고 가격도 비싸지 않은 베이비시터를 시청에서 소개해 주기 때문에 별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출산 비용도 모두 공짜=이진희씨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두 아이를 출산했다. 임신 2개월부터 매월 병원에 가 초음파검사와 양수검사 등 각종 검사를 받았지만 진료비를 내지 않았다. 난산이 예상돼 제왕절개를 했고 일주일간 1인실에 입원했지만 역시 무료였다. 이씨는 “한국 같으면 임신한 10개월 동안 드는 비용이 만만찮을 것”이라면서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국 유학생 부부 역시 “늦게 가진 아이여서 검사를 많이 받았지만 모두 무료였다”면서 “사흘간의 입원비도 모두 프랑스 정부가 부담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얼마 전부터 한 살배기 딸을 국가가 운영하는 놀이방에 맡기고 있다. 학생 신분이기 때문에 역시 거의 돈을 내지 않는다. 놀이방은 아이가 둘 이상인 가정에 우선권이 주어진다.

이처럼 외국인들에게도 혜택을 주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프랑스인이 아닌 외국인 다산이 프랑스 출산율을 높인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최근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내 외국인의 출산율은 8% 안팎에 불과하다.

◆방학 스트레스 없는 프랑스 엄마=방학 중 학교가 운영되는 것도 맞벌이 부부에겐 큰 도움이 된다. 방학이 되면 학교 건물을 이용해 지방자치단체에서 레저센터를 운영한다. 전문 강사들이 나와 아이를 돌봐준다. 박물관·공원·놀이동산 등을 방문하거나 학교 내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평소 학교에 내는 급식비 수준만 지급하면 되고 이마저도 부모의 수입이 적은 경우 거의 내지 않는다. 출석은 자유롭게 하면 된다. 한국의 경우 방학 때 엄마들이 아이를 돌보려면 더 신경을 써야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학기 중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엄마들의, 특히 맞벌이 엄마의 ‘방학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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