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허준 선생 의술 中에 널리 알리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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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이병국씨가 허준 선생의 초상화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초상화는 李씨가 한 화가에게 의뢰해 그린 것인데, 상하이중의약대의 동상도 이 그림에 기초해 제작됐다. [최정동 기자]

19일 중국 상하이(上海)중의약대에선 한국이 낳은 명의 허준(許浚) 선생의 동상 제막식이 열린다. 50년 가까운 역사, 5000여명의 학생, 세계 최대 규모의 한의학 박물관과 도서관을 지닌 이 대학에 개인의 동상이 세워지기는 처음이다.

이번 행사는 또한 침구(鍼灸)연구가 이병국(李炳國.77)씨의 10여년에 걸친 노력이 열매를 맺는 순간이기도 하다.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에 상하이중의약대를 처음 찾았지요. 72년께 서양의학과 침구학을 결합한 이 대학의 교과서를 우연히 보고 큰 도움을 받은 것에 감사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당시 총장이 내가 가져간 저서들을 보더니 '오히려 우리가 배울 게 많다'며 국제교육원의 객원교수로 초청하더군요."

이후 李씨는 1년에 몇차례씩 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을 교수진에게 선물했다.

李씨는 스무살 무렵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고혈압 등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 책 저 책 뒤적이다 '동의보감'에 접하게 됐다.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대로 스스로 침을 놓아 지병을 고친 그에게 허준 선생은 은인이자 스승이었다. 이후 그는 전통의학 대국인 중국에 허준 동상을 번듯하게 세워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결심했다. '동의보감'을 선물한 것은 이를 위한 '사전공작'이었다.

"'동의보감'을 200권쯤 뿌렸더니 다들 이렇게 훌륭한 분이 있었느냐고 해요. 분위기가 무르익은 듯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옌스윈(嚴世芸) 총장에게 '당신네 대학에 동상을 세우게 해 달라'고 졸랐지요."

嚴총장은 흔쾌히 허락했고, 중국인 설계사에게 의뢰해 교정 한복판에 200평 규모의 유리 돔을 만들고 그 안에 실물보다 더 크게 동상을 세워주었다. 비용은 李씨가 이 대학에서 받은 강의료를 모아 기부한 것으로 충당했다.

李씨가 허준 선생에게 보은(報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4년엔 양천 허씨 종친회의 요청으로 사재 1억5000여만원을 털어 경기도 파주시 인근 비무장지대 안에 버려져 있던 허준 선생의 묘를 새로 조성했다.

하지만 이 일로 李씨는 말로 다 못할 마음 고생을 했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돌팔이 주제에 감히 허준 선생의 묘를 세웠다'며 말들이 많았지요. 저는 평생 침구학을 연구하며 8000명 이상의 제자를 길러냈고 책도 130권이 넘게 썼지만 정식 면허가 없습니다. '침구가'면허를 따로 주는 곳이 없어요. 그렇다고 한학만 배운 제가 새로 입시 공부를 해 한의학과에 갈 수도 없고요."

李씨는 "죽기 전에 오해가 풀려 어렵게 세운 묘의 준공식을 제대로 치르는 게 평생의 꿈"이라고 했다.

신예리 기자<shiny@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 바로잡습니다

5월 19일자 22면 '허준 선생 의술 中에 널리 알리고 싶어' 기사 중 허준 선생의 묘를 조성하도록 이병국씨에게 요청한 곳은 양천 허씨 종친회가 아니라 가락서울시종친회며, 李씨가 댄 비용 1억5000여만원 중에는 현대침구학연구회 회원들에게서 모은 돈도 일부 포함돼 있었고, 사진 속의 허준 초상화를 그린 사람은 화가가 아니라 한의사 최광수씨였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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