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해양법 세계적 권위자 … 독도 영유권 보호에 기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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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해양법 분야의 국제적 권위자이자 한국인 최초로 유엔 고위직에 오른 박춘호(사진)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이 12일 오전 8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 78세. 박 재판관은 올해 초 혈액암이 발병해 최근 병세가 악화했으나 본인의 뜻에 따라 항암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지인들이 밝혔다.

박 재판관은 1995년 설립된 국제해양법재판소의 초대 재판관으로 입후보해 당선했고, 2005년에 재선했다. 국제해양법재판소는 유엔해양법 협약에 따라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독일 함부르크에 설립됐다. 재판관은 유엔 사무차장급의 고위직 대우를 받는다.

전북 남원 출신으로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한 박 재판관은 문교부 직원으로 공직생활을 하다 37세에 뒤늦게 국제법 연구에 뛰어들었다. 만학으로 42세에 영국 에든버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어 이외에도 일본어와 중국어에 능통했다. 한 지인은 “젊은 시절 중국어를 배우겠다며 중국 음식점에서 일하기도 했다”라며 “나중에는 중국 대학생들에게 중국어로 강의를 하는 수준이 됐다”라고 말했다.

박 재판관의 국제법·해양법 분야 식견과 논리는 정부 정책 개발에 활용됐다. 1999년 한·일 신어업협정 당시 중간 수역을 설정하며 독도 영유권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조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독도를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입각해 일본의 영유권 주장에 차분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국제법 전문가인 신각수 외교부 제2차관은 “박 재판관은 우리의 해양이익을 확보하는 중요 수단인 해양법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로 활동해 많은 기여를 했다”라고 회고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유족에게 조전과 조화를 보내 위로의 뜻을 전달했다. 이 대통령은 조전에서 “세계 법학계의 저명한 석학, 해양법재판소 재판관으로 봉직해온 박 재판관의 타계에 애도를 표한다”라면서 “박 재판관의 타계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국제법학계의 커다란 손실”이라고 말했다. 외교통상부는 고인의 업적을 기려 국민훈장을 추서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 일원동 삼성의료원에 마련됐다. 발인 16일, 대전 국립현충원. 유족은 부인 김필례 여사와 2녀.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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