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과연 降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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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이.항복한 장수(降將)'라서 사형을 피하도록 했다는 12.12및 5.18내란사건 2심 재판부의 논리는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재판부는 87년 6월29일을 이들 쿠데타세력의 내란행위 종결시점으로 봤다.6.29선 언이 全씨와그 세력들의 항복선언이라고 해석한 것이다.바꿔 말하면 6.29선언을 이끈 국민이 승리자라는 평가다.
전국민적 저항운동을 승리로 연결시킨 탁월한 역사해석에 일응 찬사를 보내면서도 全씨가 과연 항장이었던가 하는 의문은 가시지않는다.영어(囹圄)의 신세로 법정에 서있는 현재의 그는 패배자일지 모른다.그러나 6.29선언 당시는 물론,그 이후에도 줄곧항장의 입장은 아니었다.항장이라면 국민앞에 무릎을 꿇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무릎을 꿇기는커녕 대통령직을 내놓은 뒤에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장치마련에 골몰했다.12.12 동료(盧泰愚)를 후계자로 밀어 내란정신을 이어가려 했고,일해(日海)재단을 설립,상왕(上王)으로 군림하려 했다는 의혹 까지 사고 있다.
산으로,골프장으로 측근들을 몰고 다니며 세를 과시,5공재기의위협적 자세까지 보였다.검찰수사와 재판과정에서도 그는 전혀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국민들의 처분을 기다리는 대죄(待罪)의 항장태도는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부인 이순자(李順子)씨가 집필중 공개한 회고록에 6.29선언을“그분(全씨)통치의 꽃”이라고 말한데서도 잘 나타나듯 6.29선언은 국민들에겐 승리의 북소리였지만 그들 입장에선 정권유지의 호도책에 불과했다.
경복궁모임의 패거리 작당,정권찬탈과정의 무법성,특히 집권중 천문학적 숫자로 끌어모은 부정한 재산에 이르면 그를 장수라고 부르는데도 거부감이 생긴다.그가 장성출신이니.군사를 지휘.통솔하는 장군'이란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장수임에 틀림 없다.하지만장수라는 단어가 일반의 가슴에 가져다주는 뉘앙스엔 보다 품격있고 듬직함이 그려져 있다.역경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최일선에 서있는 지혜와 투혼의 지도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솔직한 면도 없었다.수천억원의 재산을 차명분산 등으로 교묘히 숨겨오지 않았는가.그는 반란집단의 두령일뿐이다.반란과 내란수괴로서 역사의 죄인인 것이다.
6.29선언을 全씨 세력들의 항복선언으로 해석한 재판부의 배려는 판결직후 벌어진 全.盧 두 집안의 6.29선언 주체다툼으로 산산 조각나버렸다.이순자씨는 6.29는 全씨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자신이 직접 건의했다고도 했다.盧씨는 직 선제개헌을 선택할 경우 대통령후보를 사퇴하겠다며 반대했다는 일화까지 소개했다.盧씨 작품인양 꾸민 것은 그를 새로운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우정의 연출이었다고 덧붙였다.
盧씨측에선 즉각 반격에 나섰다.6.29선언은 여야.종교지도자등 많은 원로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盧씨 자신이 결심한 것이라는요지다.직선제에 소극적인 것처럼 비친 것은 극적 효과를 노리기위한 전략적 제스처였노라고 설명했다.
서로 자기가 6.29선언을 탄생시킨 주인공이라고 싸우고 있으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더욱 한심한 것은 마치 자신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민주화를 실천한 화신(化身)인양 선전하고 있다는사실이다.
“거리엔 시위하는 불꽃이,권력의 핵심인 그분(全씨)내부엔 민주화라는 그 시대 최고의 이상을 위한 최고 양보라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이순자씨 회고록의 이 대목에 이르면 아연해지고만다.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지금 민주투사 전두환 을 단죄하는엄청난 실책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판결에도 언급됐지만 6.29는 국민들이 쟁취해 얻은 국민적 저항운동의 소산이다.결코 全씨나 盧씨의 작품일 수 없다.재판부의 배려대로 그가 항장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역사와 국민앞에 진심에서 우러나는 석고대죄가 선행돼야 한다.
(정치 부장대우) 허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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