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세계 극한의 美 영상터치-다큐영화"마이크로 코스모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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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격무와 공해에 지친 현대인들이 늘상 듣는 소리가 있다.한번쯤바쁜 걸음을 멈추고 풀벌레 우는 소리에 귀기울여 보라고.하지만찌든 일상에 감수성이 마모된 도시인들이 벌레소리에 갑자기 감흥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법.시인의 감각을 가진 이들에게나 들어맞는 이런 권유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억압일 수 있다.
그러나 1시간15분동안 오로지 곤충들의 움직임만 비추는 것으로 이 권유를 진실로 만드는 비범한 영화 한편이 7일 개봉된다. “풀숲을 헤치면 거기에는 또다른 혹성이 떠있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마이크로 코스모스'.
3년간 보통영화의 40배길이인 25만피트의 필름을 써서 인간의 눈이 미치지 않는 세계,마이크로 코스모스란 제목 그대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극미(極微)의 우주'로 관객을 안내하는 가족영화다.
구름떼 뭉쳐있는 창공을 조감하던 카메라가 돌연 급강하해 한뼘풀숲으로 파고든다.이 카메라가 관객을 인도하는 곳은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커다란 대접으로 보이는 세계다.나비의 숨소리와 개미의 발자국 소리가 저벅저벅 들리고 자벌레의 발가락이 극(極)사실적으로 보이는 곳,인간의 눈에는 1㎝가 어떤 곤충에게는 수백가 되고 하루에 한 계절이 지나가는 또 하나의 지구다.이곳에서 망원렌즈가 잡은 28종의 곤충들의 모습은 사실이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미를 발산한다.
그러나 영화의 초점은 신비화된 경이의 자연이 아니라 인간화된자연이다.프랑스출신 두 감독(클로드 누리드사니.마리 페레노)은자연과학자와 휴머니스트의 중간점에 서있다.두 사람은 턱을 땅에바싹 갖다대고 곤충과 눈을 마주치며 카메라를 찍고 곤충이 감춘유머를 잡아내 인간과의 벽을 무너뜨린다.영화에서 압권으로 꼽히는 달팽이 커플의 교미장면은 남녀가 살을 비비는 정사신처럼 우아하고 일자로 행진하는 개미와 애벌레들의 행렬 또한 인간의 발걸음과 어딘지 닮았다.
두 감독에게 곤충들의 세계는 생물학에서 말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아니라 성스런 생명의 어울림터다.이 세계관은 시지프스를 연상시키는 쇠똥구리의 고행장면에서 잘 드러난다.무수한 실패와 개미떼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경단을 쉼없이 굴려 올리는 쇠똥구리.그것은 하루하루 묵묵히 생의 장애물과 운명의 질곡과 대결하면서 삶을 쌓아가는 인간의 모습 그 자체다.
여기서 두 감독은 자연의 눈높이로 만물을 바라볼때 만물은 곧인간이 된다는 아름다운 진실을 창출해낸다.우리의 눈이 놓쳤던 아름다움을 살뜰히 집어내 우리 눈에 넣어주는 마술같은 영화,그것이.마이크로 코스모스'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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