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카드빚, 법원서 조정해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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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22면

냉난방기 전문 제조업체인 캐리어 광주공장에서 일하는 박정용(39)씨는 신용카드 돌려막기가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 2001년 직장에 다니던 아내는 생활비 한 푼이라도 더 벌 생각으로 처제와 미용실을 차렸다.

개인회생제도 활용하라50%는 채권

대출받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장사는 신통치 않았다. 가게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와 아내 명의의 신용카드 7장을 동원해 ‘돌려막기’를 해서 겨우겨우 꾸려갔지만 나날이 늘어나는 이자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2004년 박씨의 월급까지 차압이 들어왔다. 월급의 50%는 채권자에게 압류됐고, 나머지 절반이 들어오는 통장도 다른 채권자에게 압류됐다. 열심히 일해도 생활비로 가져갈 돈은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 주변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2007년 재무상담을 받고 개인회생을 신청할 때까지 그렇게 빌려 쓴 돈만 4000만~5000만원에 달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죽으면 다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몹쓸 생각도 했죠. 하지만 내가 죽으면 가족은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에 참고 견뎠어요.”

재무상담을 받아서 법원에 개인회생(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한 개인 채무자의 빚을 법원이 강제로 재조정해 파산을 막아주는 제도)을 신청했다. 급여의 50% 이상을 압류하는 것은 민사소송법 위반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법원에 소를 제기해 부당하게 압류된 통장을 풀었다.

지난해 말 법원은 그의 개인회생 신청을 받아들였다. 월급 297만원 중 매달 87만원씩 5년간 빚을 상환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나머지 월 210만원으로 생활을 꾸릴 수 있게 됐다.

박씨는 요즘 허리띠를 더 졸라맸다. 초ㆍ중ㆍ고 자녀 셋을 키우기가 쉽지 않았다. 애들 학원비로만 매달 70만~80만원이 들어간다.

그는 지금 석 달째 금연 중이다. 용돈이라도 아끼고 싶어서다. 술값이 부담스러워 모임에도 잘 안 나간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느냐는 말도 다 옛날 얘기예요. 아끼지 않으면 못 살아요. 예전의 나처럼 힘든 분들께 이 말 꼭 하고 싶어요. 죽을 맘 있으면 더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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