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현실>外債 1천억弗 견딜만 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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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외국에 대한 빚(외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이를 걱정하는소리가 높다.한국의 총외채는 올 상반기중 8백억,9백억달러선을잇따라 돌파해 9월말 현재 9백70억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11월중 사상 처음으로 1천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이는 올 국민총생산(GNP) 전망치의 20%를 넘는 수준이다.
국민 1인당 2천2백여달러(약 1백80만원)의 빚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이에 대해 정부는 외채가 늘긴 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선(GNP의 30~35%)에 크게 못미치며,충분히 감당할만한 수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차입과 해외투자가 함께 늘게 마련인데,늘어나는 경제 규모는 생각하지 않고.1천억달러'란 숫자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얘기도 함께 덧붙인다.
실제로 외채망국론이 나돌던 지난 85년의 경우 외채규모는 4백67억달러로 지금보다 작았지만 GNP에 대한 비중은 51.4%로 질적인 면에서는 훨씬 심각했다.세계은행은 현재 한국을 말레이시아.태국등과 함께.저(低)채무국'으로 분류하 고 있기도 하다.그러면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일까.
민간 전문가들은.낙관은 금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의 외채 증가 추세가 일시적인게 아니라,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채 증가의 주된 이유는 경상수지 적자.
수입과 해외여행이 늘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올들어 9월까지 1백70억달러에 달했고,연말까지는 2백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저축▶외국 돈을꿔 오는 것▶외환보유액등 세가지다.
가장 좋은 방법은 국민들의 저축으로 적자를 메우는 것인데 불행히도 최근에는 과소비 풍조의 만연으로 저축은 종전보다 되레 줄고 있다.
때문에 정부는 적자를 주로 외채로 메워왔고 이 때문에 경상수지 적자는 바로 외채증가로 이어졌다.
특히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한 외채는 대부분 상환이 1년이내에 돌아오는 단기외채다.
단기외채 비중은 93년 40%대에서 94년말 57.8%까지 치솟았고,연내에 60%를 넘어설 전망이다.
하반기 들어서는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 한국은행이 가지고 있는 외환보유액도 동원됐다.이로 인해 외환보유액이 6월말 3백65억달러에서 9월말 3백28억달러까지 줄어 더 이상 외환보유액을 풀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경상수지 적자가 내년에도 1백50억달러 안팎에 이를 전망이어서 외채,특히 단기외채의 증가 추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외채에 대한 이자만 해도 지난해 38억달러(약3조원)에 달했고 올해는 원화 환율마저 높아져 적어도 50억달러(약4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외채의 증가는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며,이는 자연히 원화 환율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린다.실제로 원화 환율은 연초에 달러당 7백70원선에서 최근8백20원선까지 올랐다.
환율이 높아지면 수입 물가를 자극하고,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떨어뜨리게 된다.또 외채가 늘면 신용도가 낮아져 해외 차입조건이 악화된다.
자연히 기업의 이자부담이 늘고 이는 제품의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사실 정부도 현 외채 수준이.견딜만한 수준'이라는 점만 강조할 뿐이지 앞으로 계속 늘어나면 어떻게 하겠다는데 대해서는 속시원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지급불능 사태까지 맞았던 멕시코와 우리의 경제력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당장 수출이 획기적으로 늘어 경상수지가 개선될가능성은 크지 않은만큼 외채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고현곤 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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