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공사 늦어져 미리 이사 온 가족은 비닐로 창 막고 생활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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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12면

잠실 재건축 아파트 단지는 준공 직후 입주민들의 이사와 확장공사가 겹쳐 어수선한 분위기다. 확장공사로 인한 폐자재·폐가전·생활쓰레기 등이 방치돼 있는 잠실 엘스아파트 단지 내 모습. 최정동 기자

“입주센터에서 알려드립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사 시간을 지키지 않는 업체에 대해서는 출입을 금하겠습니다.”

석 달 새 1만 8105가구… 잠실은 입주 전쟁 중

24일 오전 8시 서울 송파구 잠실동 엘스아파트(구 잠실 주공 1단지 재건축) 단지 구내 스피커를 통해 공사 시간을 알리는 공지사항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아파트 입주센터에 공사와 관련된 입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이른 아침부터 긴급 안내방송을 내보낸 것이다.

9월 30일 준공 직후 입주를 시작한 엘스아파트는 입주 한 달이 다 돼 간다. 하지만 입주민들은 콘크리트 깨는 굉음과 함께 아침을 맞는다. 공사 시간을 사전에 정해 놓긴 했지만 확장공사 일정이 계속되면서 시간을 지키는 업체는 별로 없다. 이 아파트 164동에 입주한 이모(46)씨는 “확장공사로 인한 소음을 이해는 하지만 출근 시간 전부터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아침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출근한다”고 했다. “나야 회사로 출근했다 공사가 끝나는 저녁 늦게 들어오니까 그나마 괜찮아요. 하루 종일 집에 남아 있는 식구들이 걱정이지요.” 돌을 갓 지난 아기를 데리고 입주한 128동 입주민 최모(27)씨는 “예상은 했지만 빨리 입주한 것이 후회된다”며 “아이가 공사 소음에 깜짝 놀라 깨는 바람에 낮에는 시댁에 갔다가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돌아온다”고 하소연한다.

입주민들이 겪는 불편은 아파트 소음뿐이 아니다. 공사 폐자재와 콘크리트 잔해 등 각종 쓰레기 더미가 단지 곳곳에 널려 있어 새 아파트라는 쾌적함을 맛보기가 어렵다. 공사 자재를 아무렇게나 방치해 놓아 애써 조성해 놓은 나무와 조형물 등 단지 내 조경도 많이 훼손됐다. 최근 입주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청소용역 업체가 동원돼 주기적으로 청소와 정리작업을 하고 있어 그나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지만 당분간 입주민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 워낙 대규모 입주 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다른 단지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 7월 말 리센츠아파트(5563가구·구 잠실 주공 2단지 재건축)를 시작으로 8월 말에는 파크리오(6864가구·구 잠실시영 재건축)가, 그리고 9월 말 엘스아파트(5678가구)가 한 달 간격으로 입주를 개시했다. 올 하반기 서울 전체 입주 물량의 51.5%에 달하는 1만8105가구가 잠실에 몰려 있는 것이다. 3~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7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거주하는 대규모 아파트촌이 새로 생긴 것이다. 지방 소도시 인구가 5만 명 안팎임을 감안하면 하나의 작은 아파트 도시가 만들어진 셈이다.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인근 부동산 업소들에 따르면 이 세 단지 가구의 70% 이상이 거실과 방, 주방의 베란다 확장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확장공사로 어수선한 가운데 입주가 시작되다 보니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당초 계약한 시점에 공사가 끝나지 않아 이삿짐도 풀지 못하고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해 놓은 채 일가족이 여관을 전전하는 사례도 많다.

확장 후 베란다 등 새시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주한 가구도 적지 않다. 창틀과 유리창이 없는 상태에서 비닐로 바람만 겨우 막고 며칠째 생활하기도 한다.

리센츠아파트 입주자인 차모(43)씨는 9월 중순 확장공사 과정에서 난감한 경험을 했다. 차씨는 “당시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베란다 창 쪽에 비닐을 쳐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아 달라고 요청했다”며 “하지만 업체 측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베란다가 엉망이 돼 입주 초기에 애를 먹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공사 지연은 그나마 다행이다. 확장을 신청하지 않은 집에 들어가 베란다와 화단 등을 무단으로 철거하는 사례가 엘스아파트 단지에서만 10여 건이나 발생해 집 주인이 공사 업체에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전쟁 치르듯 정신없이 공사가 진행되다 보니 공사 관리가 엉망인 것이다.

확장공사를 담당하는 인테리어 업체도 입주자와 입주 예정자들로부터 매일 쏟아지는 항의 전화로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인테리어 업체인 한스 측은 “물량이 많다 보니 때맞춰 자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공사가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하루에 수십 통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일부 인테리어 업체가 자신의 시공 능력을 벗어나는 물량을 수주한 데 따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입주자들이 확장에 보다 적은 돈을 들이기 위해 공동구매 방식으로 한 업체에 물량을 맡기는 사례도 있다. 인테리어 업계 관계자는 “실적이 우수하거나 공사 대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업체에 확장공사 물량이 몰리면서 무리하게 과잉 수주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완공 시점을 맞추지 못하거나 부실 시공을 한 경우 입주자들이 계약 위반이라고 항의해도 할 말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잠실에서 10년째 공인중개사로 활동 중인 김석만(52)씨는 “서울에서 부동산업을 한 이래 한 달 간격으로 이렇게 많은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건 처음”이라며 “올 연말까지는 이사와 확장공사가 겹쳐 공사 소음이 그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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