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미스터리 김구 암살 배후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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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초여름 낮 네발의 총성이 경교장(京橋莊)을 세차게 뒤흔들었다.육군 포병소위 안두희(安斗熙.당시 32세)가 백범(白凡)김구(金九)선생을 향해 발사한 것이었다.
1949년6월26일 낮12시30분.총성이 울려퍼지자 이미 경교장 주위에 포진해 있던 헌병들이 들어와 안두희를 헌병사령부로압송했다.
이들은 사건발생 약 한시간전부터 경교장 부근 자연장 다방에 떼지어 몰려와 대기하고 있었다.
김구 선생 암살은 사건현장에서부터 커다란 의혹을 자아냈다.이후 상식을 넘어선 안두희에 대한관대한 처분은 사람들에게 암살사건에 권력의 배후가 드리워져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안두희는 헌병사령부로 끌려가 곧 의무실에 보호조치됐다.
범행현장에서 백범의 비서들에게 얻어맞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헌병사령부 장흥(張興)사령관은 그의 회고록에서 『사건 당시 개성에 있다가 급히 서울로 돌아와 보니 범인 安씨가 전봉덕(田鳳德)부사령관의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며 『安씨를 즉시 감방에 수용토록 지시했으나 오히려 사건 발생 3일만에 나는 일선으로 전출되고 田부사령관이 사령관으로 승진,이 사건을 최종지휘했다』고 밝혔다.
6월27일 안두희는 군특무대로 이송됐다.여기서도 그는 극진한환대를 받았다.
안두희는 『특무대에서는 맨 먼저 팬티까지 벗기는 상세한 의료진단을 한시간 이상 베풀었고 이어 실권자 김창룡(金昌龍)과 커피를 마시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고 증언한바 있다.
안두희가 특무대로 이송된 바로 그날 헌병사령부와 국방부는 『백범암살은 한독당(韓獨黨)당내 분쟁으로 안두희가 단독범행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안두희에 대한 본격적인 취조가 시작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발표였다.
안두희에 대한 취조관의 선정에도 당시 채병덕(蔡秉德)육군참모총장이 직접 관여했다.김안일(金安一.80.목사) 당시 특무대장은 『사건이 발생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蔡참모총장이 밤에 특무대로 찾아와 같은 고향(평양)출신인 노엽 중위에게 이 사건을 맡기라고 명령했다』고 말했다.
김안일 특무대장은 안두희가 군법회의로 회부되기전에 6사단으로전출됐다.이어 김창룡이 특무대장으로 왔다.그는 안두희를 위해 숙직실을 개조해 호텔과 같은 특별감방을 비롯해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또 백범 암살을 직접 사주한 친일 정치브로커 김지웅(金志雄)은 안두희를 면회와 거액의 돈을 줬다.
안두희는 92년6월 김석용(金奭鏞.56.당시 백범시해진상규명위 국민운동위원장)의 권유에 의한 증언에서 『나는 첫 공판(49년8월3일)이 열리기 16일전인 7월18일 형량이 사형이 아니라 무기징역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1950년 6.25전쟁은 무기수 안두희를 다시 현역군인으로 복귀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전쟁 발발 이틀후인 6월27일 채병덕 참모총장의 지시로 안두희는 잔형(殘刑)면제처분을 받고 현역 소위로 복귀한 것이었다.
백범 암살의 배후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장은산(張銀山)당시 포병사령관을 들 수 있다.안두희는 『김구선생을 암살하기 하루 전날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던 장은산이 나를 불러 단독범행을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김안일 특무대장도 『장은산은 공공연하게 백범 암살은 내가 지시한 것이라고 떠들고 다녔다』고 말했다.
당시 군부와 경찰관계의 핵심분자들이 상호간의 정보교류라는 명목으로 만든 「88구락부」도 백범 암살사건의 기획과 뒤처리에 적극 개입한 것으로 지목받고 있다.신성모(申性模)국방장관,채병덕 육군참모총장,장은산 포병사령관,김창룡 특무대장 ,김태선(金泰善)서울시경국장,김준연(金俊淵)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정치브로커 김지웅 등이 「88구락부」의 핵심멤버였다.
김준연은 사건 직후 사건전모를 은폐하기 위해 안두희를 김지웅에게 소개한 홍종만(洪鍾萬)의 이름을 처음에는 홍우명(洪宇明)으로,다음에는 이병일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이승만(李承晩)전대통령과 미국이 백범 암살사건에 관여했는지 여부도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안두희는 92년9월 증언에서『사건 발생 1주일전인 49년6월20일께 경무대에서 이승만을 만났다』고 증언했으나,얼마 있지 않아 이 진술을 부인해버렸다.
또 安은 92년 두차례의 증언에서 『미국 정보장교 모(某)중령과 마이클 중위를 만나 백범과 한독당의 동향등에 관한 정보를제공받았다』고 증언해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 백범 암살에 관련됐음을 시사했다.
도진순(都珍淳.창원대)교수는 최근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李전대통령이 백범 암살을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사전에백범 암살 가능성을 충분히 짐작했고,미국도 백범의 민족통일노선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으므로 백범의 존재 자체를 부담스러워한 것만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이제 백범을 암살한 안두희가 피살됨으로써 그동안 제기됐던 숱한 배후설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채 영원히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동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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