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집가 이리에씨 '한국고서화도록' 발간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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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걸음새부터가 당당한게 한국인이잖아요.그림도 간결한게 힘이 넘쳐요.』 한국 칭찬으로 말을 꺼낸 이리에 다케오(入江毅夫.65)는 일본에서도 몇 안되는 한국미술품 수집가.그가 지난달 중순 자신의 소장품 7백30점을 수록한 도록 『유현재선 한국고서화도록(幽玄齋選 韓國古書畵圖錄)』을 펴냈다.
그는 이를 국립중앙박물관.국립도서관.문화재연구소.정신문화원.
서울대.이화여대.홍익대등의 도서관과 자료실에 10부 발송했다.
교토(京都)시 사쿄쿠조도지신뇨초(左京區淨土寺眞如町) 그의 자택 이름은 유현재.
이는 이리에가 10년전 교토로 이사하면서 미술관을 염두에 두고 지은 당호(堂號)다.
도록에는 고려말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것에서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의 그림과 일본에 남겨진 조선통신사 관련작품등 그림 4백40여점,글씨 2백90점이 수록됐다(5백8쪽.비매품).
『3백부 한정으로 제작했습니다.한국에 다소나마 자료가 될까해서 공공기관.대학에 보냈습니다.』 그의 컬렉션은 한국서화로선 일본내에서 첫째.둘째를 다툰다.해방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된 오쿠라(大倉)컬렉션의 한국서화에 비견될만한 질과 양이란 평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연구자나 컬렉터들 사이에는 잘 알려진물건들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만 봐도 조선초기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8폭,최근에 한국작가로 인정받게된 문청(文淸)이란 이름의 조선초기 작가의 『산수화』,그리고 심사정(沈師正)과 이인상(李麟祥)의 『산수도』와 서예.그림이 14점씩 들어있 는 강세황(姜世晃)의 『표암묵희첩(豹庵墨戱帖)』등이 꼽힌다.
김정희(金正喜)의 글이 쓰여있는 허련(許鍊)의 『소치지두화첩(小癡指頭畵帖)』도 전부터 한국의 수장가들을 매료시켜온 그림첩이다. 서예의 대부분은 편지글.그중 신라시대 김생(金生)의 글씨탁본첩,한석봉 행서첩,윤순(尹淳)의 각체서첩,김정희의 초서 10폭병풍같은 것은 소장자가 특히 자랑하는 작품이다.
이리에가 한국그림을 모은 것은 40년쯤 전부터.
도쿄 일본민예관에서 민화를 처음 봤는데 깜짝 놀랐다고 했다.
거칠면서도 활달한게,잘 그렸지만 지나치게 정돈돼있는 일본그림과는 천양지차를 느꼈다는 것.도록발간에 대해 그는 『최근 당뇨로 몸도 안좋고 당초 마음먹은 개인미술관 건립계획도 여의치 않아 우선 정리부터 해두고 싶었다』고 말한다.
도쿄출신인 그가 교토로 옮겨앉은 것도 개인미술관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의 집은 살림채에 이어 열대여섯평의 전시공간을 가진 2층건물이 별도로 딸려있다.그런데 차질이 생겼다.
『일본에서 한국서화는 중국서화에 비해 인기가 없습니다.그래서연구자 수도 적고 질도 높지 않습니다.』 미술관을 맡길 적임자를 못찾고 어영부영 세월 보내기를 하면서 서두르게 된게 도록 출간이란 설명이다.
이번 도록에는 자신이 그림을 모으면서 생각해온 한국회화에 대한 입장,즉 회화관이 될만한 것도 정리돼 있다.
중국화가 마원(馬遠)과 여기(呂紀)의 도장이 찍혀있어 전부터일본에서 중국그림으로 봤던 것을 『틀림없는 한화(韓畵)』라고 수록한 예에서도 그 점은 잘 드러난다.
『14,15세기,즉 여말선초의 회화에 대해 현재의 미술사가 갖고 있는 개념보다 기법이나 화풍.화제(畵題)면에서 훨씬 광범위한 다양성을 보인 화가들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기회가 닿으면 소장품을 전부 일반에 공개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도쿄=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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