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4000억 달러 빼돌려” 월가 음모론 뒤숭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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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세상이 뒤숭숭하면 각종 의혹이 난무하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힘든 괴담이 돌게 마련이다. 5월 광우병 사태 때도 그랬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가 닥친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는 12일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신청을 하기 전날 밤 유대계 간부가 4000억 달러를 이스라엘로 빼돌렸다는 음모론이 인터넷에서 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괴담은 신문 기사 형태로 쓰여졌으며, 반(反)유대 사이트에서 떠돌다 대중적인 사이트로 옮겨지고 있는 중이다.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이스라엘 은행 이름이 실명으로 거론되고, 이스라엘·미국 간 범인 인도 협정의 허점이 언급됐다. 리먼브러더스의 증권 부문 손실액이 실제로 4000억 달러인 점은 괴담을 더 그럴듯하게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인들이 그동안 월가를 쥐락펴락 해 온 투자은행과 유대계를 공격 대상으로 삼아 혼란과 좌절감을 해소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런 점에서 리먼브러더스는 더없이 좋은 소재다. 금융 불안을 증폭시킨 회사일 뿐만 아니라 1850년대 독일에서 탈출한 유대계 이민자가 주축이 돼 설립한 은행이기 때문이다.

황상민 연세대(심리학) 교수는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대중은 기존의 선입견과 통념에 맞춰 그럴듯하게 현상을 풀어간 이야기에 혹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 교수는 “미국은 한국과 달리 대세를 추종하는 경향이 약하고, 주류 언론이 특정 민족·인종에 관한 괴담을 소개할 수도 없기 때문에 괴담이 사회 혼란으로 이어지긴 어렵다”고 전망했다.

골드먼삭스도 도마에 올랐다. 이번엔 주류 신문의 문제 제기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3일 “골드먼 커넥션이 이해관계 충돌에 대한 의문을 고조시킨다”는 기사를 실었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경제 관료들이 대부분 골드먼 출신이어서 문제라는 지적이다.

폴슨 장관은 1999년부터 7년여간 골드먼삭스의 최고경영자(CEO)였다. 구제금융을 감독하게 된 닐 캐시커리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보도 골드먼삭스 출신이다. ‘정실 금융’ 의혹은 폴슨 장관이 왜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하도록 두고, 보험사 AIG는 살렸느냐는 대목에서 더 확대된다. 골드먼이 AIG에 200억 달러를 물렸기 때문에 AIG를 구제했다는 주장이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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