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生前 사진·메모 책 엮어 "하늘로 부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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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호씨(左)가 7일 자신의 집에서 부인 신선희씨, 둘째 아들 한미루군과 함께 책으로 엮은 부친의 일대기를 보고 있다.

"남들에겐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 하나도 버릴 수가 없더군요.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기록을 남겨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싶었어요."

이창호(49.회사원.서울 대흥동)씨는 어버이날을 맞아 부친을 기리는 특별한 '선물'을 7일 마련했다.

2년 전 작고한 부친의 유품, 친필 기록, 사진 200여점 등을 소박한 책자로 엮어 부친의 영전에 바치기로 한 것이다. 160여쪽 분량에 '아버지의 일대기'란 제목을 달았다. 42만원을 들여 인쇄소에서 제본까지 마쳤다. 부친 이재형씨가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것은 2002년 1월. 뇌일혈로 6년간의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3남1녀의 막내 아들인 李씨는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평생을 함께 산 부친의 정이 사무쳤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누워 있을 때 매일같이 직접 몸도 씻겨드리고 출근해서도 하루에 서너차례 문안 전화를 드렸던 그였다. 그러곤 편지.명함.관리비 메모까지 부친의 기록을 일일이 찾아내 손수 A4 용지에 붙여 만들기 시작했다. 책이 나오기까지 2년이 걸렸다.

李씨가 기억을 더듬어 요약한 부친의 일대기는 12세 때 종이상자 공장에서 공원으로 일하며 일가(一家)를 일군 부친의 발자취를 연도별로 빼곡히 담고 있다.

'1961년. 부친이 전화주문을 받기 위해 공장에 전화를 들여놓았다. 당시 돈 거금 1만원을 들여 백색전화를 설치했다'. 사소한 기록까지도 부친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그는 60년대 초반 아버지가 소금 대리점을 냈을 때 동네 사람들이 소금 배급표를 들고 찾아왔던 일, 아버지와 서울 대흥동 집에서 묵동까지 '리어카'로 납품하러 갔던 일 등 어릴적 가물가물한 추억들도 옮겨놓았다.

'98년, 아버지께서는 진지를 목으로 넘기기가 힘들어 콧줄로 환자용 음료를 드시기 시작했다. 콧줄을 끼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여간 고통이 아니었다'. 부친을 간병했던 기록들에는 효성이 배어있었다.

李씨의 둘째 아들 한미루(18)군은 "책을 준비하는 아버지를 보며 '할아버지를 정말로 사랑하셨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아버지의 기록이 생생해 할아버지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李씨는 "아버지의 삶을 일대기로 쓰면서 아버지가 위대해 보였다"며 "한때는 조부모까지 4대가 함께 살았던 우리 가족이 앞으로도 화목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배노필.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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