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원화는내려서, 엔화는 올라서 … 증시 동반 하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1. 1997년 한국. 당장 외국 빚을 갚을 수 없을 정도로 외화가 말라버렸다. 달러 값은 한때 2000원을 넘어섰다. 국가 부도가 날 지경에 이르자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IMF는 한국에 30%를 넘나드는 고금리 정책과 부실기업 정리 등을 요구했다. 그래야 외국 자본이 들어와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결국 30대 그룹 가운데 16개가 쓰러지고 5개 은행을 포함한 수많은 금융회사가 문을 닫았다. 중소기업의 도산과 실직자가 급증했다. 주식 값도 절반 이하로 폭락했다.

#2. 2007년 3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문제로 금융 경색이 시작됐다. 2008년 9월 15일. 급기야 5대 투자은행 가운데 하나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보호신청을 한다. 이후 주가는 곤두박질쳐 한때 다우지수 80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본격적인 금융위기 국면이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험에 비춰보면 달러화는 약세를 보이고 미국 금리는 올라야 정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다우지수는 떨어졌지만 전 세계적으로 달러를 구하려는 아우성이 확산되면서 달러 값이 확 올랐다. 금리도 주요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나서서 함께 내리고 있다. 미국이 위기의 진앙지인 동시에 세계 경제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나라별로 나타나는 현상도 제각각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는 주가 폭락 사태만 제외하고는 완전히 반대다. 지난주 후반에 한풀이 꺾였지만 원화는 연일 폭락해 달러당 1400원을 넘나들기도 했다. 10년 만이다.

환율이 오르면(원화 약세) 그만큼 달러로 표시한 수출품 가격이 내려간다. 수출이 늘어나면서 달러 공급이 는다. 달러로 표시한 국내 주식·채권 가격도 싸진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증권을 사거나 직접 투자하기 쉽다는 뜻이다. 이 같은 경로를 거쳐 달러가 국내로 들어오고 결국 환율은 다시 내려간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수익과 외국인의 주식 매수가 늘면서 주가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환율이 정상적인 경제원리로 정해지는 상황이 아니다.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지만 국내로 달러가 들어오지 않는다. 모두 달러를 못 구해 난리다.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을 팔고 달러로 바꿔 나간 돈이 300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올 들어 원화 가치는 40% 정도 떨어졌다.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아이슬란드의 크로나화 가치가 50% 정도 떨어진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태국·말레이시아 등 과거 외환위기를 함께 겪었던 나라들의 화폐 가치가 최근 석 달간 5%정도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너무 심하다는 평가다.


환율이 올랐는데도 긍정적인 측면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1년 전만 해도 900원대의 환율 탓에 중소 수출기업 네 곳 중 하나꼴로 적자를 보고 있다는 수출보험공사의 진단이 나올 정도로 원화 강세는 한국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그러나 원화가 약세로 돌아섰는데도 주가는 여전히 약세다. 세계 금융공황에 따라 외환위기를 다시 겪을 수 있다는 공포가 너무 큰 데다 수출 자체도 세계 경기의 침체 탓에 기대만큼 늘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낙관론을 짓누르고 있다.

반면 엔화는 강세를 보이며 달러당 90엔대까지 내려갔다. 달러 못지않게 안전한 자산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또 과거 일본의 저금리를 이용해 엔화를 빌려 자국통화로 바꿔 쓰던 엔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 엔화에 대한 수요도 급격히 늘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유로화 가치는 올 7월 1.6달러에 육박할 만큼 치솟았다. 이때만 해도 유로는 달러보다 안전한 통화로 기축통화의 자리를 꿰찰 기세였다. 그러나 유럽의 경기 부진이 가시화되면서 최근에는 1.3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그 자리를 엔화가 차지했다. 도쿄 미쓰비시UFJ은행의 분석가 데릭 핼페니는 “일본의 금융 부문의 건전성과 무역 흑자 기조를 감안할 때 국제 금융시장의 위험 회피 성향이 지속된다면 엔화가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특히 한국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자동차·전자 분야의 위기감이 크다. 도요타자동차·소니·파나소닉 등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며 금융주와 함께 닛케이 지수의 하락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달 도산한 일본 기업 수는 1408개로 1년 전에 비해 32% 늘었다. 2001년 3월(38.6%)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할 만큼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창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