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속내 드러낸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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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본의 해군력은 미국.러시아에 이어 세계3위다.독일.영국.
프랑스는 아무것도 아니다.어마어마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 문제를 두고 한국의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한국 해군이 어떻고 저떻다고 얘기했다는데 바 보 아닌가.
해상자위대의 이지스함 한척만 가면 아마 한국해군 7,8할은 전멸이다.이건 과장이 아니다.7,8할은 바다에서 몽땅 사라지게 된다.』 최근 일본 서점가에서 잘 팔리고 있는 책 『대장성 극비정보』의 한 구절이다.대장성의 핵심 부서인 주계국(主計局) 관료가 익명을 전제로 저자에게 털어놓았다는 내용이다.
「독도는 일본영토임을 모든 기회를 동원해 한국측에 주장한다」는 자민당의 총선 공약이 30일 확정됐을 때 위의 구절이 상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민당의 공약은 오는 20일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의 표를 의식해 만든 측면이 있다.처음으로 치러지는 소선거구제 선거에서 같은 보수파인 신진당과의 일전을 앞두고 자민당 본래의 우익 색채를 과시한 면도 있다.그러나 이보다는 국가 전반 의 보수화 흐름속에 정치.군사적 대국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의 자신감을내외에 「당당히」 선언한 감이 더 짙다.
자민당의 선거공약집은 A4용지로 무려 1백쪽 분량이다.이중 일본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시정을 다짐하는 표현은 한마디도 없다.굳이 무리해 찾는다면 2차대전 패전후 중국에 남겨두고 온 잔류일본인 대책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대신 93년 총선,95년 참의원선거때도 등장하지 않았던 독도.디아오위다오(釣魚島)에 대한 영유권주장 공약이 버젓이 자리잡았다.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도 「공식적」으로 참배하겠다고 못박았다.
김태지(金太智)주일대사는 1일 낮 자민당의 야마자키 다쿠(山崎拓)정조회장에게 전화로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그러나 망언-항의-유감표명으로 되풀이되는 도식적 패턴은 재고해야 할 것같다. 일본은 독도문제가 외교 현안으로 번지면 오히려 반가워할 입장이다.
어쩌면 「외교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자신있다」는 일본의 속마음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일이 벌어질 때마다 들끓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냉정하게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일본측의 거듭되는 망언을 막을 특효약은 당분간 없다고 보아야한다. 선거가 2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아마 자민당은 공약취소는 커녕 유감표명도 하지 않을 것이다.
노재현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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