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어머니,포도 다 팔았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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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나는 요즘 계획에 없던 친정 나들이가 잦아졌다.포도 때문이다. 어머니는 올 포도값이 지난해의 반에도 못미친다고 한숨만 쉬고 계셨다.객지에 사는 남동생이 포도를 심어놓고 주말에 와 가꿨었다.『일손도 없이 어떻게 포도를 가꾸려고 그러느냐』며 주변에서 모두 말렸건만 막무가내로 일을 저질렀다.
칠순 어머니 혼자 고향을 지키고 계신데 포도밭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셔 동생이 미워질 때도 있었다.그래도 알알이 익어가는 포도를 보며 흐뭇해하시는 어머니 얼굴을 보며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었는데….
요즘은 마음 아픈 유복자 아들의 포도농사가 농사밑천도 안나오게 생겼다며 한숨만 쉬고 계신다.
안되겠다 싶어 언니와 나는 고향으로 내려갔다.우리는 그길로 따놓은 포도를 차에 싣고 집으로 와 우리가 사는 아파트 사람들한테 사정이야기를 하고 포도를 시식시키면서 팔기 시작했다.
그런데 『포도가 달고 맛있다』면서 모두들 한상자씩 사가는 것이 아닌가.너무도 고마웠다.세번에 걸쳐 2백상자를 팔고 나니 포도를 얼마든지 팔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포도를 팔고 나면어머니께 제일 먼저 전화를 한다.
『엄마,오늘도 포도 다 팔았어요』할 때 『그래 수고했다』하시며 기뻐하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다.이제 얼마 남지않은 포도를 다 팔아드려야 그나마 구릿빛 얼굴에 굵게 진 주름이 조금이라도 펴질 것같다.
김순환 <충북청주시개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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