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vs GM대우 … 동문 디자이너의 이색 대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3만3000명 직원 모두 디자이너”(기아자동차), “세상을 디자인하라”(GM대우)

지난해 가을, 기아차와 GM대우는 ‘디자인’을 앞세운 광고를 앞다퉈 내보냈다. 두 회사 모두 디자인으로 차별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광고 속 디자인 경쟁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이제 본격적인 디자인 경쟁이 불붙을 태세다. 기아차가 8월 ‘포르테’를 출시한 데 이어, 오는 29일 GM대우가 ‘라세티 프리미어’를 내놓아 맞불을 놓을 참이다.

준중형차 시장의 디자인 경쟁은 두 회사의 디자인 총괄 부사장이 진두지휘한다. 기아차의 피터 슈라이어(55), GM대우의 김태완(48) 부사장이다. 두 사람은 자동차 디자인 교육으로 유명한 영국 왕립예술대학(RCA) 동문이다.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은 1980년, 김태완 부사장은 90년에 졸업했다.

선배인 슈라이어 부사장은 졸업 후 독일 아우디의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아우디 TT’를 디자인해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폴크스바겐 뉴비틀과 골프,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도 그의 손길을 거쳤다. 김태완 부사장은 대우차 시절 매그너스를 디자인했다. 이후 이탈리아 피아트에서 500·푼토같이 귀여운 디자인의 소형차를 맡았다.

동문이지만 디자인 철학은 딴판이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직선의 단순화’를 강조한다. 포르테는 호랑이의 코와 입 모양에서 따온 앞 그릴과 옆면의 직선을 이용해 날렵함을 표현했다. 직선을 강조하는 그의 디자인은 기아 쏘울에 이어졌다.

김태완 부사장은 곡선미를 추구한다. 라세티 프리미어는 유선형의 차체와 바깥으로 튀어나온 타이어 부분의 디자인으로 근육질 몸매를 추구했다. 김 부사장은 “포르테 디자인에는 슈라이어 부사장이 중시하는 단순함이 살아 있다. 이와 달리 라세티 프리미어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선을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준중형차에서 시작된 디자인 경쟁은 3000㏄급 준대형차 시장으로 번질 기세다. 기아차와 GM대우 모두 그랜저와 경쟁할 차를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새로 나올 기아 ‘VG(개발명)’와 GM대우 ‘VS-300(개발명)’은 포르테와 라세티 프리미어에서 보여준 디자인 컨셉트를 이어간다.

하나대투증권의 이상현 차장은 “품질은 기본인 시대이고, 디자인은 2위권 업체의 훌륭한 차별화 전략”이라고 평했다. 다만 “처음에 반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래갈 안정적인 디자인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