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국회의원들의 法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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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회의원 해먹기도 힘들게 됐다.한국유권자연맹은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의정활동을 하는지 감시하겠다며 「의정평가단」을 만들고 나섰다.대학생 감시조를 편성해 국회의원들의 발언,회의장안에서의행태를 감시하는가 하면 심지어 출결상태까지 따지 겠다고 한다.
때때로 TV를 통해 총리와 장관은 열심히 답변하고 있는데 텅텅 빈 본회의장이나 상임위회의실을 보면 국회의원들은 어디서 무엇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저고리를 의자에 걸어놓는것으로 출석(?)을 대신하고 일보러 다녔다는 옛 날 의원들의 이야기는 그나마 애교이고 요즘은 회의 참석 상태가 너무 저조해걱정하는 선배의원들도 없지 않은 실정이다.
경제는 어렵고 국가전도는 그리 밝지 못하다는데 정치가 하도 민생과 동떨어진다는 비난을 듣고보니 이런 식의 국회감시.정치감시방안까지 나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외형적인 점검으로 정치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는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국회가 기초적인 법의식을 결여하고 있는 탓이다.국회가 법을 만드는 곳인데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법을 아예안지키고 자기네들의 부패와 부정 혐의에 스스로 눈감기 때문이다. 얼마전 부정선거특위라는 것을 만들었었다.지난 선거의 부정을파헤치기로 한 개원협상 결과였다.
그런데 그 특위는 정식 회의라고는 특위가 구성되던 첫날뿐이었다.누구를 조사할 것인지,어디까지 조사할 것인지 논란만 벌이다위원장 자신이 선관위로부터 선거경비를 법정한도 이상으로 사용한혐의를 받고 물러나면서 유야무야된 것이다.
국회에서 그동안 5공청문회를 제외하곤 국정조사특위가 하나 제대로 열려본 적이 없다.
88년 5공청문회가 처음 열렸을 때는 국정조사권이 발동돼 증언감정법에 따라 많은 증인들이 국회에 불려나와 증언을 했다.국정조사권이 처음으로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다음 열린 5공정치자금등에 관한 조사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우선 여당측이 증인이 될 사람,주로 기업인들에게 해외에 나가도록 사전에 은근히 귀띔을 해주었다.증인소환장을 받지 않도록 해외에서 뻗대라는 것이다.소환장을 본인 에게직접 전달해야 한다는 조항을 악용하는 것이다.여당측이 탈법을 부추기니 귀찮고 진땀나는 증언대에 서려는 사람이 있을리 없다.
그러니 웬만한 국회조사는 거의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그것을 요구했던 야당도 정치협상이다 뭐다 해서 슬그머 니 꼬리를 내리고만다.국회의 권능을 집권당이 스스로 갉아먹고 야당이 이에 동조하는 것이다.
지금도 국회에는 윤리위가 있다.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잃은 행위를 하거나,타인을 모독하거나,또는 부정 혐의가 있는 의원에대해 국회가 스스로 조사해 징계토록 하고 있다.
그 윤리위에 몇몇 의원이 제소된 적이 있긴 했다.너무 「저질적」인 비난,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발언들이 그 대상이었다.그런데 그마저 흐지부지다.내 새끼 기꺾일라 감싸듯 소속당에서 저질혐의 의원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같은 의원인데 발언이 좀 저질이었기로 다음 선거에 치명적이 될지도 모르는 징계를 가할 필요가 어디있나,의사당에서 매일 얼굴 마주치는데 원수질일 뭐 있나… 이런 인정스러운 배려가 스스로의 권위를 훼손하고 국회를 한통속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국회의 부총무급들이 해외호화쇼핑으로 말썽을 빚고 있다.그런데정작 같이 간 의원들은 서로 감싸기 바쁘다.공범이기 때문일까,아니면 그들의 변명처럼 정말 그런 일이 없어서일까.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나고 국민들도 그들의 변명을 별로 믿질 않는 것같다.국회는 이를 또 유야무야시키는데 그들의 「정치력」을 과시할게 분명하다.
국회윤리위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고,국회의원들이 그들의 탈법을서로 묵인하니 대학생감시조가 나서는게 아니겠는가.
(편집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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