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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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을희는 그의 우주 위에 무너져 덮쳤다.
이렇게 강한 천둥을 체험한 적이 없었다.온몸이 저리고 떨렸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방사술(房事術)에 능했던 전남편 조차도 이같은 묏부리로 이르게 하지 못했다.
운우도(雲雨圖)니 건곤일회도(乾坤一會圖)니 하는 옛 춘화집으로 그는 을희를 부지런히 도발했고,「사십팔수」인가 하는 갖은 체위 그림과 비법으로 가득한 책까지 보이며 정사를 폈으나 그저담담했다.비법이란 것으로 을희의 반응을 낱낱이 시험해보려는데 저항감이 일었고 너무나 기교적인 행태가 오히려 도취를 가로막은것이다. 따스하고 자연스러운,그리고 능동적인 시간을 갖고 싶었다.그것이 규방(閨房)의 미학(美學)이거니 여겨지기도 했다.
연하의 남자가 을희에게 동정(童貞)을 바친 것은 어쩌면 필연의 결과인지 모른다.
결핵환자였던 어머니와 생이별하고 자란 구실장에겐 자궁회귀(子宮回歸)욕망이 있었고,첫 남편의 유복자를 데리고 재혼한 을희에겐 아이를 차라리 자궁으로 되돌려 보호코자 하는 잠재의식이 있었다. 둘은 필연적으로 맺어지게 되어 있었던 것인가.
호된 자책감 뒤에 이어진 강한 쾌감 속에 을희는 자기합리화를하고 있었다.인간이란 이렇게 간사한 존재인가.또 자책했다.
구실장은 자기 가슴에 엎드린 을희를 도로 보료에 눕히고 체위를 바꾸었다.첫번째 때와는 달리 그의 달은 아직도 높이 돋아있었다.그는 을희의 허리를 받치고 을희의 몸 안에 다시 들어왔다.어색하기는 했으나 이젠 허둥대지 않았다.재빨리 익힌 그 본능의 몸짓에 을희는 놀랐다.남자의 다부진 생활력을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모권시대에서 부권시대로….원초에 여자가 태양이었던 시대를 마감시키고 눈부신 남자의 시대를 스스로 열어온데엔 그들의강인한 생활력과 재빠른 적응력이 보탬이 됐을 것이다.
『결혼해 주십시오.』 그는 행위중에 느닷없이 청했다.
무슨 소리인지 을희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설마했다.
『뭐라고 했지요?』 『저하고 결혼해 주십사 했습니다.』 뒤통수를 된통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결혼해달라니.
무슨 벼락맞을 소리를 하는가.을희는 그를 몸 안에서 빼며 말을 막았다.
『농담 말아요.』 『결단코 농담이 아닙니다.제가 부족한 것은잘 알고 있습니다.하지만 결혼해 주십시오.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구실장은 다시 을희 안으로 들어왔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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