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人文學 활성화로 대학 知性 실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중세 반란농민과 기사들의 전쟁을 방불케한 대격전이 연세대에서벌어진 후 대학과 그 학생들은 거친 비난을 받고 있다.대학에 쏟아지는 그 모든 질타는 전적으로 옳다.오늘날의 대학은 사실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대학은 본디 자유로운 탐구와 논쟁과 비판을 통해 모든 부면의균형감각을 키워주는 아카데미즘을 모태로 한다.그러나 우리의 대학에는 애당초 그런 「탄생설화」가 없다.해방직후엔 학문적 미성숙 때문에 그랬고,박정희(朴正熙)이래로는 정권의 앞날을 위협하는 불길한 씨앗으로 여겨져 권력은 아카데미즘을 무참하게 유린했다.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물리적 폭력은 늦춰졌지만 첨단 방식으로 아카데미즘은 다시 초토화되고 있다.바로 경제적 생산성의 논리다.이제 대학은 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위기에 직면했다.
대학은 물론 생산적이어야 한다.그러나 대학이 상품화될 수 있는 지식만 생산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그럼에도 현재 대학은 미(美).가치.윤리를 탐구하는 인문학을 비생산적.비실용적이라는 이유로 홀대하고 있다.
현재 인문학 강의들은 대대적인 폐강 위협에 시달린다.세계화와정보화라는 급조된 이데올로기가 교육과정 개편을 주도하기 때문이다.연구소와 학회들은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무력감에 빠져있다.
가장 기본적인 인문적 지식을 산출할 자궁을 적출당한 대학은 무엇을 낳고 있는가.비판력,그리고 삶과 아름다움에 대한 심안(心眼)을 상실한채 허약하게 무너지는 학생들이다.한편에선 말초적욕구와 쾌락을 자극하는 상업전략에 휘말려 향락과 소비의 중독성이벤트로 흥청거린다.다른편에선 맹목적 강령이 숭배되고 있다.
대학생들의 정신적 공황상태,그것은 적어도 대학에서 지성적으로치유돼야 한다.그들은 여러가지 사상에 대한 비판력,그리고 삶과미에 대한 심안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다양한 논의가 원천적으로 말살당한 획일적 교육 때문에, 생산성.효율성의강요와 향락주의의 공세 때문에,그리고 또 이런 모든 것에 분노하고 실망한 사람들을 맹목의 극단으로 유혹하는 과격한 사상의 공작 때문에.
이런 모든 위협으로부터 우리 학생들을 보호하는 유일한 길은 바로 그들에게서 퇴화돼버린 사색의 힘과 균형적인 비판능력,그리고 모든 것에서 조금 더 깊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감수성을 되살리는 것이다.인문학은 바로 그런 능력을 지속적으 로 발전시키는 학문이다.정부와 사회,그리고 기업은 이제부터라도 그 활성화에 관심을 보여야한다.
이종관 춘천교대교수.윤리교육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