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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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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709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선 헨델의 오페라 '아그리피나(Agrippina)'가 대성공을 거둔다. 독일 음악가의 작품을 보려고 이탈리아인들은 구름처럼 몰려든다. 관람객들이 이 가극에 매료된 것은 전설처럼 남아 있는 로마의 역사를 노래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그리피나는 로마제국 5대 황제인 네로의 어머니다. 권력을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여인이다. 양귀비를 뺨칠 정도로 미모가 빼어났던 그는 황제인 숙부를 유혹해 황후가 된다. 그리고 정적(政敵)을 제거하는 등 정치를 마음대로 요리한다. 그는 늙어가는 황제도 독살한다. 16세인 아들을 제위에 올려 권력을 더 오랫동안 향유하기 위해서다.

아들이 즉위하자 그는 섭정(攝政)하려 한다. 그래서 틈이 벌어진다. 아들이 어머니의 세력을 치자 어머니는 아들을 폐위하려 한다. 종국엔 아들이 자객을 보내 어머니를 살해하는 비극이 일어난다. 헨델의 오페라는 네로가 어떻게 황제에 오르는지를 노래한다. 아그리피나가 궁정에서 꾸미는 음모와 술책을 실감나게 그린다. 군주와 소수의 왕족.총신(寵臣) 등에 의해 움직이는 이른바 궁정정치의 이면을 잘 묘사한 게 이 오페라다.

이처럼 가극에서나 남아 있을 법한 궁정정치가 우리의 여당에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최근 당에 ▶이런저런 인맥을 통해 이뤄지는 비공개적 정보유통과 자리다툼▶밖으로 내건 좋은 명분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 주고받기▶스스로 모사(謀事)하면서 끊임없이 타인의 모사를 의심하는 일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꼬집은 행태가 사실이라면 여당은 '닫혀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것은 궁정정치의 본색이다. 여당 인사의 입각과 원내대표 선출 등을 둘러싸고 특정 파벌끼리 벌이는 신경전도 그들만을 위한 궁정정치가 아닌지 묻고 싶다.

여당은 柳의원의 지적을 못들은 척 넘기려는 모양이다. 그것은 '닫혀 있는' 모습으로 비친다. 열린우리당이 정말 '열려 있다'면 궁정정치가 발붙일 리 없다. 여당은 당장 중앙당 정치의 방문 곳곳을 열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어디에 밀실과 칸막이가 있는지 점검하고, 헐 것은 헐어야 한다. 그래야 여당이 주창하는 참여 민주주의도 꽃을 피울 수 있지 않겠는가.

이상일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