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앨범 '미로 속의 피리' 낸 하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 하림은 1집에서 보여준 화려한 기교를 접고, 2집에선 아일랜드 전통악기를 직접 연주하며 여백이 살아있는 음악을 선보인다. [김경빈 기자]

"이번 앨범은 아일랜드로 떠나는 일종의 여행이에요."

지난 3일 두번째 앨범'Whistle in a maze(미로 속의 피리)'를 낸 하림(28)을 만났다. 흑인음악(1집 앨범)을 발표할 때보다 표정이 밝았다.

"솔풍의 흑인음악은 진한 음식 같아요. 금방 질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아일랜드풍이다."어려서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였죠.'슬픈 나라'란 이미지가 강했거든요. 게리 무어와 에냐의 나라이기도 하고요."

지난해 8월 그는 아일랜드로 훌쩍 떠났다. 차를 빌려 아일랜드의 시골길만 골라서 달렸다. 그렇게 2주간 동네 선술집인 펍(Pub)에서 아일랜드의 전통 음악에 흠뻑 젖었다. "그들의 슬픈 역사가 음악에 고스란히 스며 있더군요." 그는 순식간에 아일랜드 음악에 빠졌다. 길거리 악사들과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다. "물어 물어서 악기를 직접 만드는 장인까지 찾아갔죠. 악기도 사고, 소리를 내는 구조도 알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사들고 온 아일랜드 전통악기를 2집 앨범에다 녹여 넣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앨범에는 '자연스러움'이 넘친다. 낡은 라디오에서 "치~직!"거리며 흘러 나오는 음악처럼 온기(溫氣)가 있고, 소박함과 깊이를 동시에 안겨주는 여백의 미도 있다. "일부러 앨범을 소리로 채우지 않았어요. 소리와 소리,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음악적 공간을 살려내고 싶었거든요."

타이틀곡인 '여기보다 어딘가에'에선 아일랜드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또 '초콜릿 이야기'는 가사와 멜로디가 어깨동무를 한 것처럼 산뜻하게 어울리는 곡이다.

그는 가수들에겐 '불문율'로 통하는 목소리 보정작업도 마다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목청으로 음반 작업을 끝냈어요. 과도한 기술은 오히려 음악을 해치니까요."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다. 그에겐 진정성이 있었다.

가사의 내용도 진솔하다.'군중 속의 고독'도 묻어난다. "자신의 얘기가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귀밑까지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비밀을 들킨 어린 아이 같은 심정"이라며 "가사를 통해 나를 객관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가슴을 아리게하는 솔직한 가사, 거기에는 그의 삶이 조각보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은 계기도 궁금했다. 군 복무 때였다. 외박을 나온 그는 단골 카페를 찾았다. 손님이 한명 뿐이라 그는 슬그머니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두세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손님이 울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죠. 음악이 사람을 울릴 수도 있구나. 그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아직은 20대다. 그는 "관심의 폭이 넓은 대신 깊이가 얕은 것이 내 약점"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새로운 음악을 향한 그의 여행은 팬들을 설레게 한다. "요즘은 국악을 재즈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 중이죠." 벌써부터 다음 앨범이 궁금해진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