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영 기자의 글로벌 인터뷰]“이 대통령, 대국민 협상에 더 많은 시간 투자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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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14면

-세계화가 게임이라면 세계화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무엇인가.
“우선 세계화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겠다. 나라건 개인이건 세계화를 피할 수 없다. 세계화의 또 다른 규칙은 게임 참가자들이 세계 공통 가치인 ‘좋은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운영에서는 경쟁과 자유시장경제를 강제한다. 세계화는 또한 모든 문화가 그 존엄성에서 동등하다고 설파한다. 다른 문화보다 우월한 문화는 없다. 문화제국주의 시대는 갔다. 남녀 평등도 피할 수 없는 가치다.”

기 소르망이 말하는 2008년 한국의 좌표

-규칙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제외한 이유가 있나.
“세계화 담론에서 핵심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그 문제다. 세계화의 모델은 두 가지다. 한국이 추구하고 있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있다. 나머지 하나는 중국·러시아·아랍 국가들의 ‘계몽적 전제주의(enlightened despotism)’다. 문제는 ‘계몽적 전제주의’가 지속 가능한지다. 서구식 민주주의는 검증을 받았다. 국내외적으로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이겨냈다. 중국과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검증받은 미국·프랑스·일본 등 서구식 민주주의권에서 국가 지도자들의 인기가 바닥인 이유는 무엇인가.
“지도자의 인기는 민주주의의 목표가 아니다. ‘계몽적 전제주의’ 지도자들은 인기가 필요하다. 러시아 푸틴 총리나 중국 후진타오 주석의 인기가 낮다면 그 체제에서는 큰 문제가 생긴다.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에 의한 통치다. 민주국가에서 지도자의 인기는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그러나 ‘체제의 인기’는 변함없는 게 민주주의다.”

-한국 민주주의의 오늘은 어떤가.
“한국은 아시아 최고의 민주국가다. 일본이나 대만보다 민주적이다. 한국은 여야 간 평화적 정권교체를 두 번 이룩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높다. 미국 컬럼비아대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민의 90%는 민주주의가 가장 좋은 체제라고 답했다. 일본은 75%, 대만은 50%였다.”

-한국에선 최근 개헌 논의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5년 단임은 짧다. 한국의 국가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선 4년 중임이 바람직하다. 국회의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대통령에게 힘이 지나치게 집중돼 의회에서 진정한 소통이 이뤄질 수 없다. 의원내각제가 한국에는 잘 맞지 않는다고 본다. 정당 간 갈등의 골이 깊기 때문이다.”

-그 골의 중심에는 지난 10년에 대한 평가 문제가 있다. 전임 대통령 두 분을 모두 만났다고 하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매우 인상적(impressive)인 인물이었다. 개인 스타일에서는 ‘유교적 권위주의’가 엿보이긴 했으나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에 바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평가하는 것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는 소탈한 인물로 진정한 보통사람의 대통령이었다. 외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지난 20여 년간 한국 사회는 변했으며 보다 개인주의적 사회가 됐다. 그는 그러한 흐름을 잘 이해한 대통령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글로벌 고문(global advisor)로서 어떤 말을 하고 싶나.
“대(對)국민 협상에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최고 지도자는 끊임없이 국민을 설득하고 자신의 정책을 홍보해야 한다. 선거 캠페인이 당선 이후에도 계속되는 것이다.”

-최근 월스트리트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본주의에는 사이클이 있다. 혁신(innovation) 때문이다. 혁신은 버블을 낳는다. 부동산 버블도 다른 버블과 다르지 않다. 1920년대에는 자동차 버블이 있었다. 3000개 자동차 회사가 난립했다. 정보기술(IT) 버블 때 생겨난 기업의 80%도 사라졌다. 현 금융 체제는 수리가 필요하겠지만 혁신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또한 혁신을 위한 해법은 업계에서 나와야 한다. 미 정부도 규제안을 내놓겠지만 여론을 의식한 것이지 본질적 해결책은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경제 강대국의 꿈을 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역시 문제는 혁신이다. 혁신을 측정하는 한 방법은 특허 건수다. 미국의 비영리 싱크탱크인 랜드코퍼레이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유럽연합·일본에 이어 4위의 특허를 등록하고 있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한국이 경제규모는 세계 11위이지만 혁신 능력에서는 4위인 것이다. 이 점만 보면 한국은 중국보다 경제적 미래가 더 밝다. 아직까지 중국에선 성장은 있으나 혁신은 미미하다. 강국은 스스로를 혁신할 수 있는 국가다. 특허 건수로 측정되는 경제·산업 혁신 능력을 배가하려면 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

-한국의 취약점은 무엇인가.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현대·삼성 등 한국 기업들은 인지도 높은 브랜드다. 국가 차원에서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홍보하는 작업도 일본과 달리 체계적이지 못하다. 나는 최근 미국에서 한국 홍보광고를 TV에서 보고 놀랐다. 너무나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민주국가라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브랜드 가치가 있다. 해외에선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적 국가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한국은 국립박물관 하나만으로 방문할 가치가 있다. 엄청난 박물관이 한국에 있다는 것을 해외에선 아무도 모른다.”

-향후 북한 체제의 향방은.
“중국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으며 군부가 지배적인 국가라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4년 전 나는 북한을 프랑스 정부 특사로 방문했다. 군부가 생산·무역 등 경제 분야도 장악하고 있었다. 당의 역할이 강화될 것이라는 황장엽씨 등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은 지금 그대로의 북한을 좋아한다. 중국에 북한은 일본과 미국에 들이밀 수 있는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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