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에게 동화 들려주고 싶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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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버려진 나뭇가지를 누가 거들떠나 보나요? 그런데 말이죠, 이 하잘것없는 나무막대기에도 그 나름대로의 편력이 있거든.”

소설가 김주영(69)씨가 첫 그림소설을 냈다. 나무 막대기의 ‘성장소설’이다.

농부의 손에 무심코 꺾인 나뭇가지는 회초리가 되는가 싶더니 똥을 휘휘 젓는 똥친 막대기가 되어 뒷간에 버려진다. 막대기는 누군가의 손에 들려, 또 홍수에 떠밀려가 상상도 못한 길을 밟는다. 이 아기자기한 이야기에서 대하소설 『객주』 『화척』 『활빈도』의 작가 김주영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손녀가 넷이거든요. 얼마 전에도 미국 가서 고 녀석들 얼굴 보고 왔지. 그런데 우리 손녀들은 천재는 아니란 말이요. 이런 보통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건 없을까 생각했어요. 그 동안 내가 쓴 소설은 아이들이 읽기엔 버거웠으니까.”

일러스트 = 강산

그래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무 막대기, 파리, 생쥐 등 ‘작은 것’들이 그 주인공이다. 작가에겐 “평소 정이 가는” 대상이다. 대상은 사람에서 미물로 옮겨갔지만 사실 김주영이 그리는 세계는 변하지 않았다. 백정이나 보부상처럼 “역사의 행간에서 배설된 사람들”을 써왔던 그다. 그런 길 위의 사람들과 아주 작은 생명들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가치 있다고.

사랑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집 떠난 후에야 엄마나무의 큰 사랑을 깨닫는 막대기의 모습은 영락없는 사춘기 소년이다. 막대기는 간절히 이루고픈 꿈도 꾼다.

“나는 비로소 홍수에 떠내려 오면서도 살아야 한다는 내 꿈을 접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침착하게 내 운명의 속살 안으로 가만히 손을 내민 행운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 필경 외로울 테지요. 그러나 외로움을 사르며 자라나는 나무는 튼튼합니다. 외로움을 갉아먹고 자라난 나무의 뿌리는 더욱 땅속 깊이 뻗어 나갑니다.” (『똥친 막대기』 중)

‘그림소설’이라고 이름을 붙인 만큼 일러스트레이터 선정에도 고심을 기울였다. 젊은 일러스트레이터 강산의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그림이 글의 맛을 더욱 살렸다.

작가는 ‘작은 것’들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소설 연작을 준비하고 있다. 곧 ‘똥두간 생쥐의 기막힌 인생’을 주제로 한 소설이 나온다. 계획 중인 총 10편의 소설 제목에 다 ‘똥’자가 붙을 거란다.

“똥이라고 하면 더럽고 피하고만 싶지만 사실은 그게 생명하고 연결되어 있거든요. 생명을 낳게 하는 거름이 되죠. 난 그런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거에요. 그러니까 앞에 꼭 붙일 거야.” ‘똥’ 말이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일러스트 = 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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