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늉만 낸 공무원 연금 개혁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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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어제 내놓은 연금개혁안은 한마디로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2년여의 논의 끝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하기엔 큰 변화도, 개혁 의지도 읽기 어렵다.

신규 임용자의 국민연금 강제 가입 등 근본적인 구조변화는 모색하지 못하고, 몇몇 계수만 건드리는 소극적 개정에 그쳤다. 그나마 핵심 쟁점 사안들은 국민의 희생을 전제로 공무원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정됐다.

연금보험료 산출 기준인 본인 부담률을 5.525%에서 7%로 올려 개인 기여도를 높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인상률은 당초 기대(10% 이상 인상)는 물론이고, 공발위가 지난해 1월 내놓은 1차 개혁안(8.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연금 수령액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지급률의 경우 2.12%에서 1.9%로 10% 정도 낮추는 데 그쳤다. 지급률을 무려 33%나 삭감했던 지난해 국민연금 개혁과 비교하면 개혁안이라고 하기에 낯 뜨거울 정도다. 이번 개혁안을 종합하면 ‘지금보다 좀 더 내고 거의 그대로 받는’ 방식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비슷한 가입 조건의 국민연금 가입자에 비해 여전히 큰 혜택을 보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 시비는 계속될 전망이다.

공발위는 이번 개혁안이 적용되면 향후 10년간 연금 재정의 적자 규모가 37%가량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상당수 전문가의 견해는 다르다. 일시적인 착시 현상일 뿐 구조적인 문제점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적자 폭이 다시 크게 확대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연금개혁안이 이처럼 용두사미가 되고 만 것은 무엇보다 공무원들의 반발 때문이다. 특히 지난 6월 공발위에 공무원 관련단체 대표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개혁안은 급격히 후진했다. 결국 공무원들의 밥그릇 문제에 행정안전부가 주심을 보고, 공무원들끼리 논의한 셈이 되고 말았다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도대체 일반 국민에 비해 퇴직 후 더 많은 연금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공무원들의 논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민간기업 종사자들에 비해 더 많이 일하는 것도 아니고, 경쟁력이 높은 것은 더욱 아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올해 발표한 세계 55개국의 국가 경쟁력 평가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보다 2단계 하락한 종합 31위를 기록했다. 태국·칠레·슬로바키아보다 뒤졌고, 그 주요 요인 중 하나가 정부 부문의 비효율이었다. 공무원들이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판국에 노후까지 일반 국민보다 따뜻하게 보장해 달라는 것은 염치가 없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기금 고갈로 발생한 적자를 국민들의 세금으로 메워주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까지 3조원 이상이 들었고, 앞으로 10년 동안만 무려 30조원 이상이 추가로 소요된다고 한다. 이번 개혁안은 이런 상황에 아랑곳없이 앞으로도 혈세로 퇴직공무원을 부양해 달라는 주문이나 다름없다.

행정안전부는 이번 안을 토대로 법안을 만들어 가을 정기국회에 상정한다는 방침이다. 아직 시간은 있다. 국민 공청회 등 폭넓은 여론수렴 과정을 두고 다시 논의해야 한다. 공무원연금제도는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으로 일원화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복지 천국이라는 스웨덴도 형평성 논란과 엄청난 적자재정 문제로 2001년 이후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포르투갈·영국은 신규 임용공무원을 아예 국민연금(혹은 유사한 별도 연금)에 가입시키고 있다.

지난 2년의 경험으로 이미 공무원 중심의 연금 개혁은 한계를 보였다. 이제 외부의 충격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스스로 약속했듯이 행정개혁의 본보기로 공무원 연금개혁에 직접 나서야 한다. 사학연금·군인연금 등 비슷한 처지에 있는 특수직역연금들의 원만한 개혁을 위해서도 공무원 연금개혁의 성공은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