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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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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 2005년 12월 23일 오후 4시 도쿄 가스미가세키(霞ヶ關)의 외무성 장관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당시 외상과의 인터뷰를 마친 기자는 정신이 멍해졌다. 20여 분의 인터뷰 동안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가 전부인 양 매달리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밖에 없다” “이웃 나라와는 원래 좋은 관계 맺기 어렵다”는 자극적 발언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결정타는 인터뷰가 끝난 뒤였다. 기자가 자리를 일어서며 “대립 중인 외교 현안이 많아 직설적 질문이 많았던 것 같다. 실례했다”고 ‘예’를 갖추자 그는 퉁명스럽게 이렇게 답하는 게 아닌가. “‘김상’뿐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는 게 다 원래 그런 게 취미 아닌가. 다 그렇더라고.” 배석한 국제보도관이 어쩔 줄 모르며 당황하던 그 장면을 아직도 난 기억한다.

#2. 2008년 9월 22일 오후 3시 자민당 당사. 차기 총리로 당선된 아소는 24일의 취임식과 29일의 소신 표명에서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끌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로 했다. “‘총리 아소’는 외곬으로 빠지지 않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외교를 할 것”이란 내용이다. 일 정계의 실력자인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도 “아소가 오히려 한국 문제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두고 보라”고 한국 정부 관계자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아소 차기 총리의 얼굴은 두 가지다. 그를 끔찍이 귀여워했던 외조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1878~1967) 전 총리의 얼굴과 ‘비즈니스맨 아소 다로’의 얼굴이다.

농담을 섞어 비꼬는 투로 독설을 퍼붓는 버릇은 ‘쇼와(昭和)의 원맨 재상(宰相)’ 요시다 전 총리를 빼닮았다. 아소는 1979년 첫 선거에서 단상 밑 청중에게 “시모지모(下下·아랫것들) 여러분!”이라고 외쳤다. 요시다 전 총리의 말투 그대로다. 요시다는 53년 총리 재임 시 국회에서 야당의원에게 ‘바카야로(바보XX)’란 욕설을 퍼부어 국회가 해산되는 등 잦은 설화를 일으켰다.

개인 재산 50억 엔이란 막강한 재력, 시가는 쿠바 아바나산만 고집하는 귀족 스타일도 유전이다. 언론을 적대시하는 것도 닮았다. 요시다는 “신문은 매일 거짓말만 쓴다”며 신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맘에 안 드는 질문을 한 기자에겐 가차없이 물컵을 집어던졌다. “당신, 어디 신문 기자요?”라고 시작하는 아소의 도발적인 언론관도 별 다름이 없다. 미국의 방위우산 속에서 일본의 힘을 쌓아가야 한다는 아소의 ‘미국 집중외교’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한 요시다 전 총리의 복사판이다.

한편 ‘비즈니스맨 아소’의 얼굴은 상인 기질에서 나오는 현실감각이다. 그는 외상 재임 중 강성 발언은 했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참배하지 않았다. 타협할 것은 과감히 타협했다. 라종일 전 주일대사가 감기에 걸리면 어떻게 알았는지 목감기에 좋다는 유자즙을 보내는 섬세한 배려도 보였다.

그의 두 얼굴은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아소의 본류는 요시다 시게루의 DNA다. 우익 성향에다 자신과 일본에 대한 우월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 비즈니스맨의 얼굴은 어찌 보면 그의 ‘본얼굴’을 잠시 숨기기 위한 페인트 모션에 불과하다. 총리가 되면 실용주의 노선으로 변신할 것으로 믿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도 마찬가지였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지그시 버텨야 하는 ‘고난의 한·일 시대’가 온 것이다.

외교의 시야도 넓힐 필요가 있다. 최근 주일 미국대사관 고위 관계자들이 의원회관에서 민주당 의원을 전방위로 접촉하는 이유는 뻔하다. 임박한 총선에서 야당인 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이 큰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 내의 한국에 대한 섭섭함은 위험수위에 달한 느낌이다. 집권 자민당의 오래된 얼굴들과 폭탄주를 마시고 친교를 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인 외교’는 이미 수명을 다했음을 자각할 때다.

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