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키코 쓰나미'…손실 1조6000억 넘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태산’을 무너뜨린 키코(KIKO·통화옵션계약)의 여파가 심상찮다. 태산LCD는 키코로 인한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앞서 16일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이 회사는 올 상반기에만 매출 3441억원, 영업이익 114억원을 거둔 중견기업임에도 결국 도산을 면치 못했다. 시장에서는 “태산LCD가 이 지경이라면 다른 기업도 위험하다”는 말이 나온다.

◆눈덩이 손실=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키코 피해 때문에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인 업체는 132곳이다. 이들의 손실액은 1조원에 가깝게 불었다. 소송 접수 당시 달러당 1000원 기준으로 3200억원 선이었던 것이 최근 환율이 1100원 선을 웃돌자 피해가 늘어난 것이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은행의 키코에 가입한 480개 중소기업과 39개 대기업의 손실 금액이 6월 말 현재 9678억원에서 최근엔 1조6000억원 규모로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번 돈 다 까먹어=21일 현재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파생상품 손실이 자기자본 대비 30%를 넘는 코스닥 기업만 11개다. 성진지오텍은 올 상반기 1148억원의 파생상품 손실을 봤다. 자기자본(1605억원)의 90%다. IDH는 상반기 손실로 현재 자기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고, 에스에이엠티는 자기자본(822억원)에 맞먹는 803억원의 손실을 봤다.

장사를 해서 벌어들인 돈을 키코로 몽땅 날린 기업도 많다. 2분기 26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포스코강판은 키코 거래로 그 두 배에 달하는 515억원의 손실을 봤다. 반도체 설계 기업인 엠텍비전도 영업이익(29억원)의 3배를 웃도는 돈(107억원)을 까먹었다.

◆투자 기회 될까=키코로 피해를 보기는 했지만 일부 기업은 가치에 비해 주가 하락 폭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디스플레이 필름 업체인 상보는 2분기 영업이익의 두 배를 웃도는 키코 손실을 봤지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한화증권은 분석했다. 임승범 연구원은 “코팅 기술에 대한 노하우를 기반으로 신규 사업을 추진해 내년에는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3일 연속 가격제한폭 가까이 급락한 제이브이엠에 대해 대우증권은 ‘중소형 최강 기업’의 하나로 꼽았다. 병원·약국 자동화 시스템과 관련한 독점 기업으로 영업이익률이 30%를 웃돌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환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선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솔로몬투자증권 김중원 연구원은 “환율이 오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싸다는 이유만으로 투자하는 것은 무리”라며 “향후 환율이 안정되고 키코 관련 부실 규모가 대강 드러난 이후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키코(Knock In Knock Out)=환율이 일정 범위를 웃돌 경우(Knock In) 계약 금액의 2~3배에 달하는 달러를 시장가보다 낮은 환율로 은행에 팔도록 설계돼 있다. 달러를 시장에서 비싸게 사서 은행에 싸게 파는 셈이다. 금감원은 환율이 10원 오르면 손실액이 1000억원씩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이 일정 범위 아래로 떨어지면(Knock Out) 계약은 해지된다.

▒바로잡습니다▒

 ◆기사의 표에 들어간 현대엘리베이터는 통화옵션 거래로 손실을 본 적이 없어 바로잡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파생상품 거래로 손실을 보기는 했으나 이는 환율 변동을 헤지하기 위한 ‘키코(KIKO)’ 등 통화옵션 상품이 아니라 주식 스와프·옵션 거래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재 통화옵션 상품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혀왔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