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톱 디자이너 남성 독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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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60년대를 앙드레 쿠레주의 시대로,70년대와 80년대를 각각이브 생 로랑과 샤넬.아르마니의 전성기로 이름짓는다면 과연 90년대 패션계의 총아는 누구일까.
미국 패션전문지 『보그』 최신호는 세계 패션계에서 명멸하는 숱한 디자이너들 가운데 「우리 시대의 디자이너」란 호칭을 받을만한 8명을 추려 소개했다.존 갈리아노.헬무트 랑.톰 포드.스테파노 가바나.도메니코 돌체.아이작 미즈라히.마이 클 콜스.마크 제이콥스가 그 주인공.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30~40대의 남성 디자이너라는공통 분모를 갖고 있다.미국인인 미즈라히.콜스.제이콥스 세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유럽 대륙 출신.
패션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사회상을 가장 민감하게 포착하는장르인 만큼 이들 디자이너가 만든 옷속엔 90년대 동시대인들의정서가 고스란히 투영돼있다고 볼수 있다.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59년 선보인 전대미문의 미니 스커트가 단지 길이를 짧게 잘라낸 치마가 아니라 새로이 떠오른 젊은이들의 반항적인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었듯 말이다.
이들 디자이너가 지향하는 소비자들은 이른바 X세대와 베이비붐세대의 중간에 속한 이들로 특정 브랜드에 열광하기보다 자신의 입맛에 딱 떨어지는 옷을 찾아다니는 개성 지상주의자들.따라서 같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만든 옷들은 하 나의 테두리에묶일수 없을 만큼 독특한 개성을 과시하고 있다.
예컨대 갈리아노와 랑의 옷들은 양 극단을 보여준다.랑이 장식성을 가능한 배제한 단순한 옷들을 창조하는 「미니멀리즘」의 대가라면 갈리아노는 동화적인 상상력을 한껏 발휘한 옷들을 시즌마다 펼쳐놓는다.
미즈라히.제이콥스.콜스는 미국 패션 특유의 실용적이면서도 깨끗한 선의 옷들로,「돌체&가바나」 브랜드를 10년째 함께 이끌어온 돌체.가바나는 정교한 속옷과 시실리풍 망토를 결합시킨 지극히 여성스런 스타일로 이름이 높다.
90년 구치사에 입성한 포드는 넓은 깃의 실크셔츠.스웨이드 골반바지등 내놓는 상품마다 폭발적 인기를 모으면서 사양길에 접어든 노(老)기업을 되살려내는 능력을 과시했다.
각기 고유의 개성에 충실한 이들 디자이너는 다양한 작품세계뿐아니라 하나같이 앞선 「장사 감각」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시대 정신에 발맞춘다.
뉴욕에 살면서 밀라노에서 패션쇼를 열고 라이선스 사업을 위해해마다 수차례 아시아를 방문하는 식으로 전세계를 발로 뛰는 새로운 디자이너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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