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문화체험>그린밀 댄스페스티벌-최형오씨의 참관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호주의 유일한 무용제인 그린 밀 댄스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멜버른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호주무용단의 메릴 탕키드의 연설이 인상적이었던 지난달 30일개막행사가 끝난뒤 곧바로 여러 극장을 찾아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그리고 이제 한국에서 초청받은 두명의 무용수 가운데 한사람인 김현옥씨의 공연을 보기 위해 채플 오브 채플 공연장을 찾았다. 채플 오브 채플 공연장 앞에 멈췄을때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무용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극장을 찾아왔는데 축제의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조용한 성당만 버티고 서있다니….
성당을 개조해 극장 뿐만 아니라 미술전시장등 다양한 문화활동을위한 공간으로 쓴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베트남 국립무용단과 함께 김현옥 현대무용단은 바로 이 채플에서 3일부터 5일까지 공연했다.포스터 한장 붙어 있지않은 이 썰렁한 공연장을 처음 보았을때 실망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안쓰런마음이 들었다.하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놀라 지 않을 수 없었다.겉모습과 전혀 다른 그린 밀 페스티벌의 진짜 모습이 비로소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호주의 내로라하는 무용 관계자들과 각국에서 온 세계적인 평론가들이 많은 관객들과 함께 모두 여기에 있었다.
같은날 같은 장소에서 먼저 공연한 베트남 국립무용단의 공연이끝나고 극장 스태프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멈췄을때 온 세상은 숨소리조차 없는 침묵과 어둠뿐이었다.그때 마치 먹구름을 비집고 나오는 한줄기 달빛같은 움직임이 새어나왔다.김현 옥씨의 춤사위는 움직이는듯 멈춰버린듯 이렇게 시작됐다.
『밤이여 나누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김현옥씨가 이탈리아 여행중 구상한 것으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된 바 있다.터질듯한 긴장감을 주는 이 작품 다음으로 윤이상(尹伊桑)의 음악에 맞춘 1인무 『소나티네』가 이어졌다.
이 공연을 본 호주사람들은 『마치 어머니의 품속에 있는듯 아늑하고 따스한 정서를 느꼈다』고 찬사를 보냈다.
호주를 비롯한 전세계 무용인들은 이날 김현옥 현대무용단이 마지막으로 올린 작품 『모두즈』가 지닌 독특한 표현방식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와 함께 나무뿌리로 머리장식을 하고새빨간색의 강렬한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등장하면서 『모두즈』는 시작됐다.
「신과 인간의 갈등」「역사의 순리와 반전」「시간의 흐름과 멈춤」.심오한 철학이 때로는 몸부림치고 때로는 멈추면서 사람의 신체를 타고 표출됐다.그 순간 옆자리에 앉은 호주 관객들이 감동에 젖어 눈시울을 붉히는 것이 보였다.
과연 무엇이 이 사람들에게 이처럼 강렬하게 와닿는 것일까.현대무용에 있어 서양과 동양이 다른 점을 생각해보게 됐다.서구의무용이 무용수 개개인의 기교가 중심을 이룬다면 우리 한국의 무용은 다분히 철학적이다.신과의 교류를 춤으로 담 을 수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옛문화에서 온 새로운 문화적 충격에 호주 관객들은 끊임없는 박수갈채를 보내며 객석에서 떠날줄 몰랐다.
예술의 전당 조명감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