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 “북한서 발생할 모든 상황 대비” 메모 회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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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가 안개 속에서 펄럭이고 있다. [박종근 기자]

미국의 북한 전문가인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 재단 사무총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북한은 군부 집단협의체(Military Junta)로 통치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9일(현지시간) 워싱턴 사무실에서 한 인터뷰에서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이라는 군 직책으로 북한을 통치해 온 데서 알 수 있듯이 군부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며 이같이 예측했다.

그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때는 이미 김정일 위원장이 10여 년 이상 공개리에 주요 정책 결정에 관여해 왔지만, 지금 그의 아들들은 그 같은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며 “북한 군부는 앞으로도 김정일의 아들이 아니라 김일성·김정일의 이름을 빌려 통치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북한 군 수뇌부가 중국의 군 지도부와 같이 개혁·개방에 앞장설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행태는 정반대”라며 “국제사회와 접촉해 본 적이 없고 북한 내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군부가 권력을 잡을 경우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가능성이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래식 무기 전력에서 한국에 크게 뒤진 북한 군부가 핵무기나 미사일 개발을 통해 입지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어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한동안 ‘불안한 기간’이 지나야만 할 것”이라며 “북한의 지도체제가 불안해지면 북한 내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미 행정부 신중한 반응=백악관과 국무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김 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대비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도 “미국 측에선 김 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발생했다고 믿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미국도 아직 정확한 진상을 모르는 것 같다”며 “한국·미국·일본·중국 등 관계 당사국이 모든 정보망을 가동하고 있는 만큼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했다.

미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이날 AP통신 등 주요 언론에 일제히 김 위원장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김 위원장이 쓰러졌다는 날짜가 지난달 14일이나 22일이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나오는 건 미 정보기관과 행정부 측 인사들이 수집된 정보의 일부를 흘렸기 때문이다.

미 의회에선 “북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메모가 아태지역 관련 전문위원과 의원 보좌관 사이에서 회람됐다. 메모는 “만일 건강이상설이 사실이라면 김정일 정권이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정정이 불안해지고 군부가 권력 투쟁을 한다면 한국·일본 경제엔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의 민간 정보분석기관인 CNA의 켄 고스 국장은 자유아시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김 위원장 사망 가능성에 대비해 비상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는 걸 중국 소식통에게서 들었다”고 밝혔다. 김정일 체제를 연구해 온 그는 “그런 계획이 존재한다면 김정일은 후계자를 이미 정해 놓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경우 북한은 큰 무리 없이 정권을 이양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NYT)는 미 정보 당국자의 말을 인용, “북한이 권력 이동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며 “김 위원장의 사망이 임박한 것 같지는 않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이상일·김정욱 특파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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