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구제금융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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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비실비실 대던 주식 가격이 9일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틴틴 여러분 부모님 중에서도 주가가 올라 오랜만에 환하게 웃은 분들이 계실 겁니다. 주가가 오른 것은 미국 정부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란 두 금융회사에 각 1000억 달러씩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한 게 계기가 됐습니다. 원래 이들 회사는 아주 튼튼한 회사였죠. 그래서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과 세계적인 금융회사들도 이 회사에 많이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주택 가격이 크게 내리자 시름시름 앓더니 ‘망할 수도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문제는 이들 회사는 문닫으면 그만이지만 피해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패니메이 등에 투자한 금융회사가 휘청거리고, 금융회사가 부실해지면 기업도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는 ‘도미노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 미국 정부가 거금을 쏟아붓기로 작정한 겁니다.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정도 사라지니 주가가 오른 건 당연하겠죠. 이쯤에서 틴틴 친구들은 ‘구제금융’이 뭔지 대충 눈치챘을 겁니다. 쉽게 말하면 틴틴 친구들(금융회사나 기업)이 친구(대개 금융회사)에게 돈을 꿨는데 빌린 돈을 갚지 못할 상황에 처하자 부모님(정부)이 대신 갚아주는 게 구제금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말 저축대부업체의 도산이 크게 늘자 1240만 달러, 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란 회사의 파산 당시 35억 달러를 구제금융으로 지원했습니다.

한국은 미국보다 더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97년 11월 한국은행의 곳간(외환보유액)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자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이란 국제기구에 19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신청했답니다. 수만 개의 기업이 도산하면서,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앉았던 바로 ‘외환위기 시대’ ‘IMF 구제금융 시대’가 시작된 것이죠. 한국 정부는 195억 달러를 빌려 금융회사나 기업이 해외에서 빌린 돈을 갚는 대신 경제정책의 상당 부분을 IMF 지시에 따라야만 했답니다. IMF 구제금융과 별도로 정부는 채권을 대량 발행하고, 각종 기금을 긁어모아 이를 금융회사와 기업에 지원했습니다. 공적자금이란 이름의 대규모의 구제금융이 단행된 것이죠. 은행에만 55조8000억원, 종합금융회사·증권사 등 제 2 금융권에 46조3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습니다. 이렇게 금융회사는 긴급 수혈로 정신을 차린 뒤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재개했고, 기업도 열심히 돈을 벌면서 2001년 우리 정부는 IMF에서 빌린 돈을 모두 갚았답니다.

이처럼 각국 정부는 금융회사가 위험해지면 구제금융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융회사는 다른 금융회사는 물론 기업·개인과 돈을 빌리고, 꿔준 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위기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기업에 대한 구제금융은 금융회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 기업에나 공적자금을 넣지는 않습니다. 고용이나 매출이 많아 경제에 영향이 큰 기업, 또는 방위·전력 등 한 나라에 없어서는 안될 산업을 담당하는 기업이 위험에 빠졌을 때 공적자금이 투입되곤 합니다.


미국에선 70년대 초 록히드(항공)와 펜센트럴(철도), 70년대 말 크라이슬러(자동차)란 회사에 구제금융이 지원됐었죠. 한국에선 외환위기 여파로 위기에 몰린 대우그룹·현대그룹 계열사에 많은 돈이 지원됐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란 조선회사를 매각하는데 정부가 ‘배 놔라, 감 놔라’ 간섭하는 이유도 이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데 정부 돈이 투입됐기 때문이지요.

이런 의문이 드는 틴틴 친구도 있을 거예요. “수많은 기업이 망해가는데 어떤 기업은 도와주고, 어떤 기업은 내버려 두는 건 불공평하다.”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금융회사나 기업에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나면 그게 잘된 결정인지를 놓고 오랜 시간 논란이 일곤 합니다.

이제 ‘경제의 주름살을 펴니 구제금융이란 좋은 것이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도 있겠네요. 그러나 “구제금융을 하는 데 필요하니 국민 모두가 세금을 더 내시오”라고 정부가 강요한다면 어떨까요. 구제금융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틴틴 친구일지라도 “그건 싫다”고 돌아설 겁니다. 이처럼 구제금융은 결국 국민이 낸 세금을 밑천으로 삼고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국민의 혈세로 구제금융을 지원했는데 상당액이 떼일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97년 이후 우리 정부는 모두 168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을 금융회사와 기업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6월 말까지 정부가 돌려받은 돈은 91조7000억원(회수율 54.4%)에 불과합니다. 물론 앞으로 정부가 가진 기업의 주식을 팔면 회수자금은 더 늘어나겠지만 돈을 받은 뒤 사라진 기업이 많기 때문에 일정 부분의 손실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2003년 이후부턴 신규로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걸 법으로 금지했지요.

구제금융이 ‘자율과 그에 따른 책임’을 중시하는 자유시장경제의 질서를 뿌리째 흔든다는 논란도 빚어지고 있지요. ‘어려워지면 정부가 도와주겠지’라고 생각한다면 기업이 경영을 함부로 할 우려가 커진다는 겁니다. 미국 정부가 패니메이 등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을 발표한 뒤 그에 대한 찬반 양론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지요.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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