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공부] 민속놀이 재미 ‘쏠쏠’ … 학습능력 향상은 ‘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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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곧 교육이죠.” 곽연수씨 가족이 6일 한복을 입고 윷놀이를 즐기고 있다. 왼쪽부터 아빠 곽연수씨, 규현군, 엄마 한경희씨, 도현군. [이찬원 기자]

“아빠, 꼭 ‘개’ 나와야 해. 그래야 엄마팀 말 잡을 수 있단 말이야.”

“이왕이면 윷 던지고 ‘개’ 나오면 더 좋잖아.”

“엄마, 우리가 이겨야 아빠한테 피자 얻어 먹을 수 있죠.”

6일 오후 3시, 가족이 모여 윷놀이를 하느라 곽연수(43·서울 은평구 녹번동)씨 집 거실이 시끌벅적하다.

곽씨와 작은아들 규현(녹번초 6)군, 엄마 한경희(43)씨와 큰아들 도현(녹번초 4)군이 한 팀이 됐다. 곽씨 가정은 추석이나 설날 때면 윷놀이를 즐긴다.

곽씨는 “우리집만의 게임 규칙을 만들어 지키고, 네 식구가 팀을 나눠 놀이를 즐기며 협동심을 키운다”고 말했다. 규현군은 “추석에 또래 사촌이 모이면 윷놀이나 보드게임을 주로 한다”며 “추석 때 우리 가족이 이기려고 시간날 때마다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족대명절인 한가위가 4일 앞으로 다가왔다. TV 앞에서 시간을 보내지 말고 온 가족이 놀이를 통해 가족애와 협동심을 키우면 어떨까. 덤으로 학습에 도움이 되는 놀이라면 일석이조다. 놀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추석에 즐길 만한 놀이를 알아봤다.

◆‘역할 바꾸기’로 철학 놀이=명절 내내 부엌은 엄마들 차지다. 한씨는 “남자 아이들이라 부엌일에 서툴러 많이 시키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번 추석에는 역할 바꾸기 게임을 하기로 했다. 남자·여자, 어른·아이가 역할을 바꾸는 방식이다.

도현군은 “명절 때만 되면 TV에서 엄마들의 명절증후군 얘기가 나오는데 이번 추석에 직접 경험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음식 만드는 일은 어렵고 동생 규현군과 함께 친척들이 오면 직접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맡기로 했다.

동덕여대 아동학과 정대련 교수는 “철학은 ‘생각하기’에서 시작된다”며 “명절에 남자·여자·어른·아이에게 주어진 역할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 것”을 조언했다.

추석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왜 차례를 지내는지, 추석 때 지켜야 할 예의범절과 조상의 의미 등에 대해 가족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공부가 된다. 추석에는 달을 보며 소원을 빈다. 정 교수는 “나와 가족을 위한 소원, 자연과 지구를 위한 소원을 글로 쓴 후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볼 것”을 권했다.

◆계산 능력 키워주는 산가지놀이=투호던지기·연날리기·널뛰기 등은 추석의 대표적인 놀이다. 특히 산가지놀이는 나무로 만든 가는 가지를 이용해 수를 세거나 계산을 하는 우리 전통놀이다. 성냥개비로 간단히 응용할 수 있다. 편을 가른 뒤 성냥개비를 쥐고 있다가 앞으로 던진다. 떨어져 있는 것은 치우고 서로 붙은 성냥개비 중 하나를 떼어낸다. 이때 다른 성냥개비를 움직이면 실패해서 상대방에게 기회가 넘어간다. 많이 떼어낸 사람이 승리한다.

놀이연구회 ‘놂’ 정인준(서울 망우초 교사) 회장은 “숫자를 표현하는 산가지 배열 방식이 있어 이를 규칙에 따라 바꾸면 사칙연산을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집에 손님이 오면 음식을 차리는 동안 칠교놀이를 했다. 칠교판은 직삼각형·정사각형·평행사변형 등 7조각으로 이뤄진다. 7조각으로 만들 수 있는 모형이 100종이 넘는다.

경기 발곡초 김종만 교사는 “7개의 도형을 조합하면 여러 모양이 만들어지면서 도형에 대한 이해와 기하학적인 사고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송편을 만들면서 여러 모양을 표현해 보거나 달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자녀와 토론해 보는 것도 좋다.

◆보드게임으로 자본주의 원리 익혀=민속놀이가 단조롭게 느껴진다면 보드게임을 해본다. 보드게임은 놀이뿐 아니라 교육적인 요소가 많다.

보드게임을 잘 활용하면 경제 개념을 익힐 수 있다. 모형 화폐 사용으로 화폐의 역할도 배울 수 있다. 가상의 화폐지만 자기 돈으로 건물이나 땅을 구입해 다른 사람에게 임대해 소득을 만든다. 같은 자본금으로 시작했지만 어떻게 경제활동을 했느냐에 따라 게임이 끝난 후 자본이 차이 난다. 자본주의 원리를 배울 수 있다.

참가자의 수준에 따라 부동산이나 회사 설립을 경험할 수 있는 보드게임을 선택할 수 있다. 가족끼리 자주 보드게임을 한다는 곽씨는 “게임을 하면서 소득·지출·주식·부동산·보험 등을 가상 체험할 때 경제 개념을 설명하면 아이들이 쉽게 이해한다”고 말했다.

경제 교과서나 뉴스에서 어렵게만 보이던 시장가격의 원리·기회비용·희소성 등의 경제원리를 보드게임으로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다. 게임만 잘해도 경제에 기본이 되는 합리적인 선택을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윷놀이로 사회 경험=김 교사는 “모든 놀이가 곧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놀이의 규칙을 이해하고 지키면서 사회를 경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것이 윷놀이다. 게임을 하기 전 윷가락·윷판·윷말에 대한 규칙을 가족이 합의해 정한다. 윷말을 사용하는 전략을 키울 수 있다.

명절은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가족수가 적은 경우 평소 혼자 있을 때가 많지만 명절에는 떨어져 살던 친척들이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해볼 수 있다.

정 교수는 “추석을 계기로 친척들의 촌수나 명칭을 알아보는 생물학적 관계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관계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 중 큰어른을 중심으로 가계목(家系木)을 그리면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박정현 기자, 이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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