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고령화의 부담 나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1세기를 앞둔 세계 여러나라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선진국에서는 날로 심화되는 고령화가 어깨를 누르고 있으며,개도국들은도시화의 급속한 진전이 초래하는 각종 부작용의 어두운 그림자가드리워지고 있다.또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 최빈 국(最貧國)의 삶은 적어도 21세기 초엽에는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개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적어도 경제적으로는-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는 우리의 좌표로 볼 때 우리의 걱정 또한 「선진국형」일 수 밖에 없다.
최근 선진 각국 최대의 고민은 고령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부담의 증가다.인류의 오랜 소망인 「장수(長壽)」는 「인간답게」라는 수식어가 앞서지 않을 경우 그 의미를 갖지 못한다.문제는이 「인간답게」라는 표현에는 상당한 비용지출이 전제돼 있다는 점이다.바로 여기에 고령화 문제의 핵심이 자리잡고 있다.누가 어떻게 비용을 댈 것인가.
얼마전 일본의 후지종합연구소가 연금.의료.교육등 국민이 국가로부터 받는 금액과 이를 위해 국민이 부담해야 할 세금및 사회보험료를 세대별로 시산(試算)한 바에 따르면 현재 60세이상 계층의 경우 생애 순수익(여생동안 받게 될 혜택에 서 일생동안부담해온 돈을 뺀 금액)은 4천만엔을 웃도는 반면 현재 10세미만의 어린이들은 4천만엔 가까운 순손실을 보게 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40세를 경계로 생애 손익(損益)이 갈린다.
이러한 시산결과가 사실이라면,또 그러한 사실이 개개인의 뇌리에 새겨진다면 누가 이렇듯 명백히 손해보는 일을 하려 할 것인가. 이러한 격차가 수정되지 않을 경우 이른바 「세대간 부양(扶養)」에 대한 신뢰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으며,이러한 신뢰의 붕괴는 세대간 갈등을 통한 사회구조의 동요로 이어진다.
일본은 궤도수정의 시간이 있는,미래에 대한 불안이지만 복지국가의 종가(宗家)격인 서구에서는 현실의 문제다.유럽 각국이 최근 국민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사회보장제도의 대폭적인 손질-수혜폭(受惠幅)의 축소-을 포함한 재정개혁에 나서고 있는 것은 현 제도가 갖는 한계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전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21세기에 대비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단계의 차이는 있지만우리도 그들이 겪고 고민하고,이제는 수정에 나선 바로 그 궤도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 후 또는 노후(老後)에 대비하기 위한 연금제도로 맨 처음 도입된 군인연금이 벌써 거덜나 엄청난 재정부담을 주고 있고,뒤이어 생긴 공무원연금도 오래지 않아 같은 과정을 되풀이 할명백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게다가 가장 방대한 대상을 포함하는국민연금 또한 현행 부담-지불구조로는 현재 30대의 노년(老年)을 겨우 책임질까 말까 한,일련의 상황전개와 우울한 예측으로부터 눈을 돌려서는 안된다.
연금자산의 운용방식에도 분명 문제가 있지만 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또한 정부가 책임진다는 말도 감당치 못할 수준으로의세부담 증가나 재정인플레라는 보다 끔찍한 상황에는 눈을 감은 「무책임」한 얘기일 뿐이다.
전후 독일의 아데나워정부에서 오랫동안 경제장관으로 일하면서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낸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처럼 국가에 기대는 것은 「남의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복지국가는 계급이 없는,그러나 혼(魂)이 없는 사회를 만든다」고 까지 말할 생각은 없다.
사회적 부조는 필요한 것이며 이를 제도화.조직화하기 위한 국가관리의 필요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문제는 그 「정도」며 「세대간 부양」의 신뢰가 정말로 무너지기 전에 우리는 그에대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국제경제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