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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와 울산 경제 함께 살릴 길 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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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대부분의 외지 사람은 울산이라고 하면 공장이나 공해를 먼저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막상 살아보면 산과 바다, 태화강이 어우러진 천혜의 아름다운 도시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울산은 꿈의 동물인 고래의 원조 고장이다. 이 점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울산시 울주군 반구대의 절벽 암각화(국보 285호)엔 고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제작 시기가 신석기 말이나 청동기로 추정되는 것을 보면 그 시절부터 울산 앞바다엔 고래가 넘쳐난 듯하다.

장생포는 1986년 상업 포경이 금지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포경선 28척, 인구 1만2000여 명의 울산 지역 최고의 항구도시였다. 지금은 포경 금지에 공해 문제까지 겹치면서 1600여 명의 주민이 어업과 음식점으로 고래 도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울산에서 국제포경위원회(IWC) 총회가 5월 27일 열리게 된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다. 이번 총회는 86년 상업 포경을 전면 금지한 모라토리엄 선언 이래 다시 상업 포경의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다.

따라서 각국의 대표자와 민간 단체들이 날카롭게 대치하며 총칼 없는 전쟁을 벌일 태세다.

이 IWC 총회에 앞서 국제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는 이미 지난 4일 레인보 워리어호를 장생포에 입항시켜 해상시위를 벌였다. 고래 보호를 위해 고래고기 거래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캠페인이다. 이와 함께 지역의 환경단체들도 고래사랑회를 조직하며 포경 허용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장생포 주민과 관할 남구청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특산물인 고래 포획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소한 연구 목적의 포경만이라도 허용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포경 반대국들의 기본입장엔 변화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울산총회에서도 회원국 4분의 3의 지지를 얻어 상업 포경이 허용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60개 회원국 중 포경 찬성국은 일본.노르웨이.아이슬란드 정도고 한국은 중도국가로 분류돼 있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는 국제사회의 이해 득실에 따라 중도적 입장을 견지해 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젠 개최국이 된 이상 해양수산부와 울산시는 분명한 입장을 정하고 이의 관철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개최 도시인 울산시는 시민단체들의 각종 입장에 따라 우왕좌왕하지 말고 이번 총회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하고 시민의 동의를 얻어 행사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유서 깊은 고래의 도시 울산에서 세계 57개국 800여 명의 대표와 세계 90여 개의 NGO가 모여 고래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와 문화활동을 펼치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 꿈의 생명체인 고래 보호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화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축제가 됐으면 하는 게 대다수 지역 주민의 바람일 것이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