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봄이 오면 산에 들에"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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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최인훈연극제가 손진책 연출의『봄이 오면 산에 들에』로 지난 1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렸다.94년 오태석연극제에 이어 예술의전당이 주최하는 극작가의 이름을 내건 연극제로 우리 무대에서 중요한 기획으로 주목받고 있는 연극 제다.
개막무대인 『봄이 오면 산에 들에』에는 윤문식.김종엽.김성애씨등 미추무대에서 낯익은 중견배우들과 서상원.전일범.주정환.조정근.한혜수.오보현씨등 젊은 얼굴들을 기용하고 과거 오태석 사단에서 일하다 무대를 떠나 있던 지자혜씨를 끌어내 A,B팀으로나눠 무대를 만들었다.이 작품은 77년 동랑레퍼토리에서 유덕형연출로 초연돼 그해 한국연극영화예술상(현 백상예술대상)에서 각종 상을 휩쓴 성공을 거뒀었다.
문둥이가 된 어미를 따라 아비가,딸이,사위가 문둥이가 돼 가난하지만 이별없는 산골의 평화를 찾아낸다는 이야기를 봄철 아지랑이처럼 아련하고 온기어린 어조로 그려낸 이 작품은 최인훈 희곡의 격조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손진책씨의 연출은 숨죽인듯한,그리고 단조로운 전반부의 집요한어조와 후반부의 증폭된 속도와 들썩거림을 대비시킨 선명한 색채로 드러났다.
관객이 극장 안에 들어서면서 처음 만나는 것은 무대 앞에 한줄로 늘어선 돌사람(石人)들이다.자그마한 크기,닳아서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그리고 개중엔 목이 없는 것도 있는 돌사람들이다. 이들은 연극의 시작에서 무대 밑으로 사라지고 그대신 무대 후면에서 주인공들이 그들과 닮은 자세로 솟아오른다.그리고 극의후반 종결부분에서 돌사람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풀각시 같은 분장의 코러스가 등장해 다시 한번 같은 형태의 전개를 반복한다.
그리고 문둥이 어미를 문밖에 세워두고 모른체 할 수 없다고 딸이 뛰쳐나가 어미를 얼싸안는 장면의 떨어지는 배경막 처리와 음향효과로 이 무대의 절정을 만들어 냈다.지루할 정도로 천천히뒤틀면서 가던 무대의 속도가 이 하나의 절정과 앞뒤를 잇는 등.퇴장의 설정으로 확실히 풀어지는 시원함을 얻어내고 있었다.초연무대였던 유덕형씨의 무대가 강렬한 어조,진한 명암,육박하는 힘으로 빨리 설득해내려는 인상적인 무대였다면 19년후에 만들어진 손진책씨의 무대는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잔잔한 어조로 큼직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무대였다.
구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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