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154. 풋풋한 추억의 진행형, 고교야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최근 공연계에서는 1970년대와 80년대 대학교에 다닌 이른바 '7080 세대'를 상대로 한 마케팅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혼성보컬 '아바(Abba)'를 주제로 한 뮤지컬 '맘마미아'가 대성공을 거뒀고, '그 시절의 젊음'을 다룬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장기 공연 중이다. 한국방송이 제작한 '7080 보고 싶다'도 열띤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7080 보고 싶다'는 KBS가 지난 1월 '열린 음악회' 설 특집으로 제작한 '7080-추억의 그룹사운드'가 인기를 끌자 그 바람을 등에 업고 만들어졌다.

모두 다 '추억'과 '향수'에 컨셉트를 맞춘 마케팅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그들은 '아줌마'와 '아저씨'다. 가정과 직장에서 '기성세대'가 되면서 문화의 흐름에서 한걸음 밀려나 있던 40대와 50대다. 그런 그들에게 앞서 언급한 공연은 젊음의 추억과 애틋한 향수를 되살려주는 '문화적 비아그라'인 셈이다.

스포츠에서 그들에게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켜 주는 이벤트는 뭘까. 고교야구다.

그들은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이전 아마야구의 메카인 동대문구장에서 고교야구의 열기에 한번쯤은 어깨를 들썩거렸을 세대다. 74년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짜릿한 역전극에 환호하고, 76년 최동원.김시진.김용남 등 '고교야구 트로이카'의 출현에 가슴 설렜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75년 제9회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터져나온 김윤환의 3연타석 홈런은 대학가요제에서 샌드페블스가 목청껏 부른 '나 어떡해'의 후렴구처럼 가슴에 남아 있다. 73년 9월 1일 한국과 일본의 청소년대표 대결 1차전에서 유대성이 '네시'로 불렸던 일본의 괴물투수 에가와를 상대로 때려낸 결승 홈런 한방은 '아니 벌써'를 외치며 등장한 그룹사운드 산울림이 전해준 문화적 충격과 다름없다.

고교야구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81년 수많은 스포츠 스타를 제치고 최고 인기를 누렸던 운동선수는 까까머리 고교생 박노준이었다. 그가 제11회 봉황기 결승 경북고와의 경기에서 홈으로 슬라이딩하다가 왼쪽 발목을 다쳤을 때 그가 입원한 한국병원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여중.고생들은 '오빠부대'의 원조다.

고교야구의 영원한 고향 동대문구장에는 이렇게 많은 추억과 향수가 숨쉬고 있다. 그리고 그 추억과 향수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26일 동대문구장에선 제38회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의 막이 올랐다. 지역예선을 거쳐 27개팀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그 시절의 김윤환과 박노준이 흘렸던 '땀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다.

7080세대, 아줌마.아저씨들에게 고교야구는 '젊은 그대'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다. 또 하나의 '맘마미아'다. 프로야구나 메이저리그가 주는 완숙미 대신 풋풋하고 싱그러운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추억과 향수의 무대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