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계 비.이효리 키운 명창의 차세대 사랑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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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 03면

안숙선(59) 명창은 젊은 소리꾼 ‘밀어주기’로 유명하다. 판소리의 드라마를 강조한 창극을 관객에게 알리면서 그는 차세대 소리꾼을 여럿 키워냈다. ‘춘향’ ‘시집가는 날’ 등을 통해 스타가 된 남상일(30)과 서정금(32) 등이 ‘안숙선 표’ 창극의 대표적인 히트 상품이다. 안숙선은 잘생기고 예쁜 소리꾼을 무대에 내세우면서 청중의 범위를 넓혔다. 팬클럽을 거느린 소리꾼들이 나오고, 이들이 ‘국악계의 비ㆍ이효리’ 같은 애칭을 얻게 된 것도 안숙선의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제자들과 ‘심청가’ 완창한 소리꾼 안숙선

다음 세대 소리꾼에 대한 안숙선의 애정은 8월 30일 국립극장 KB 하늘극장에서 빛을 발했다. 그는 제자 여섯 명을 데리고 ‘심청가’를 완창했다. 안숙선은 지난해 소리 인생 50주년을 맞았다. 그간 각종 기념공연을 치르고 올해의 첫 완창 무대에 선 이날, 그는 후배들에게 대부분의 무대를 양보했다.

안숙선이 곽씨 부인의 유언 대목까지를 부르고 들어가자 제자들이 차례로 이야기를 이어받았다. 우선 감정 전달에 재능 있는 배우 서정금이 밥 구걸 나가는 심청을 그려냈다. 서울대 법대에 재학하면서 혼자 판소리를 배우다 안숙선을 만나 본격적으로 소리의 길을 걸었던 한승석(40)이 물에 빠지는 소녀 심청의 모습을 절절하게 전달했다. 이어 김유경(36)ㆍ김지숙(35)ㆍ유수정(48)ㆍ정미정(41) 등 국립창극단의 대표 배우들이 나와 스승에게 배운 창극의 묘미를 청중에게 전했다.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은 안숙선의 몫이었다. 그는 젊은 제자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노련하게 걷어들였다. 심봉사와 심청의 절박한 대화가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뻗어나왔다. 총 네 시간 반 길이의 공연이 밤 11시를 넘겨 계속됐지만 청중의 집중력은 오히려 높아졌다. 그 어떤 소리꾼보다도 대중의 감정을 정확하게 건드리는 안숙선의 소리가 확인된 무대였다.

‘대중과 친한 판소리’를 소리꾼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활동하는 안숙선은 창극의 대중화에 주력하면서 소리에서 거북한 요소를 빼고 자연스러운 감정을 실었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후의 일이다. “창극을 하더니 소리가 변질됐다”는 비판도 이때부터 나왔다. 일제시대에 판소리를 신파조로 불러 숱한 비난의 대상이 됐던 이화중선(李花中仙·1898~1943)에 빗대어 ‘20세기 이화중선’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래도 청중은 여전히 그의 편이다. 안숙선이 출연해 노래하고 직접 살풀이를 췄던 작품 ‘청’은 국립창극단의 최다 공연 횟수(34회)를 기록하고 가장 많은 관객(4만 명)을 끌어들였다. 요새 인터넷에는 “안숙선 명창의 소리가 담긴 mp3 파일을 구한다”는 글이 돌 만큼 그는 대중과 친해졌다. 이쯤 되면 그의 소리는 ‘변질’이 아니라 ‘변화’를 겪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악 평론가 김문성씨는 “안숙선 명창은 전통에서 완전히 엇나가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풀이했다. 안숙선은 오정숙ㆍ박동진에 이어 세 번째로 판소리 다섯마당 완창을 37세에 해냈던 인물이다. 창극에 매진한 이후로도 완창 무대를 쉬지 않았다. 이때마다 스승 김소희ㆍ성우향 명창 등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는 엄격한 소리를 선보였다.

안숙선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은 예순을 앞두고도 연습을 쉬지 않는 ‘악바리’ 근성 덕이다. 그는 젊은 시절 국립극장의 지하 보일러실에서 밤새 연습했던 인물이다. 지금도 이동하는 차 안에서조차 소리 연마를 쉬지 않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젊었을 때는 한 시간이라도 허투루 보내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좀 더 최근의 인터뷰에서는 “‘명창’이라는 호칭보다 ‘연습벌레’라는 별명이 더 듣기 좋다”고 여전한 욕심을 드러냈다.

그는 “보물 발견하는 듯한 즐거움을 줬던 판소리 선배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다음 세대 음악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자신을 사랑하는 청중에게 젊은 소리꾼을 자꾸 소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자 여러 명과 함께 판소리 대목을 나눠 부른 30일의 공연 방식 또한 안숙선의 스승인 김소희 명창이 좋아했던 틀이다. ‘남원의 아기 명창’으로 시작해 50년 동안 소리를 붙든 안숙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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