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지는 층수 규제 …‘초고층 재건축’ 꿈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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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5~15층의 낡은 아파트 80여 개 동이 빼곡한 서울 압구정·청담동 일대. 강남구는 2005년 2월 초 3종 주거지역인 이 일대를 30~60층 30여 개 동으로 재건축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정부는 같은 달 2·17 대책을 통해 초고층 재건축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집값 상승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정부가 8·21 대책을 통해 3년 반 만에 재건축 층수 규제를 푸는 쪽(2종 주거지역 최고 15층→평균 18층)으로 방향을 틀면서 2종 주거지역은 물론, 강남구 일대 3종 주거지역의 초고층 재건축이 다시 추진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는 2005년 2·17 대책 당시 2종 주거지역의 층수 제한을 풀지 않고, 압구정동처럼 층수 제한이 없는 3종 주거지역에서도 초고층 재건축을 불허하겠다고 못 박았다. 초고층의 허용 상한선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35층으로 굳어졌다. 정부 대책 이후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한 최고 층수도 35층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2종 주거지역 층수 완화로 초고층 규제의 의미가 사실상 없어지게 됐다. 앞으로 2종 주거지역에서도 30층 넘게 재건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영덕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부채납 인센티브 등을 감안하면 층수가 평균 20층 정도까지 올라가 최고 35층도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2종 주거지역에서 35층 정도까지 재건축할 수 있다면 3종 주거지역의 초고층 재건축을 막을 명분이 없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초고층 불허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층수 규제를 풀어도 재건축 부담금 등 다른 규제장치가 마련돼 있어 집값 급등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지부진하던 재건축 사업이 다소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 단지들은 용적률 대신 층수 규제만이라도 풀어줄 것을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강동구 고덕 주공2단지 변우택 재건축추진위원장은 “층수가 높아지면 다닥다닥 붙은 닭장 같은 아파트를 면할 수 있어 사업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2종 주거지역에 속한 이 단지는 사업부지 기부채납을 통해 최고 40층이 넘는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압구정동 한양7차 재건축조합 관계자도 “소형·임대주택 의무비율 등 다른 규제는 그대로지만 초고층으로 재건축할 수 있다면 사업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층수가 완화되면 주거환경을 쾌적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층수가 올라가면서 건물 수가 줄면 그만큼 녹지공간이 늘어난다. 또 다양한 층수의 아파트를 배치해 스카이라인이 다양해질 수 있다.

J&K부동산투자연구소 권순형 소장은 “초고층으로 지으면 주건환경이 좋아져 집값이 더 많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며 “층수 완화는 간접적으로 사업성을 좋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장은 “초고층 주택의 안전·에너지효율 등에 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며 “건축비가 많이 들어 분양가가 올라가면서 집값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민범식 국토연구원 도시연구실장은 “무분별한 초고층 재건축은 오히려 도시 미관을 해칠 수 있다”며 “주변 경관에 맞춰 층수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안장원·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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