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미대선] 빡빡해진 의회 윤리 규정…미 전당대회 호화 파티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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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치인과 기업인·로비스트가 모여 호화 행사와 우아한 만찬을 즐기기로 유명한 미국 공화·민주당의 전당대회 모습이 달라질 전망이라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20일 보도했다. 양당의 전당대회는 미국 전역의 로비스트가 몰리는 ‘로비의 장’이다. 의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파티가 연일 벌어진다. 이런 이유로 호화판 파티는 ‘전당대회의 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5~28일(현지시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나 다음 달 1~4일 미네소타주의 세인트폴에서 개최되는 공화당 전당대회 참석자들은 낯선 광경을 목격하게 될 듯하다.

우선 의자가 사라져 자리에 앉아 식사를 즐길 수 없게 됐다. 포크를 사용해 먹는 음식은 꿈도 꾸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아침 식사는 베이글이나 롤빵, 크루아상 정도로 제한되고, 달걀은 찾아보기 힘들 듯하다. 샌드위치나 햄버거 등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음식이 주종을 이루고, 미트볼이 제공되더라도 데워지지 않은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IHT는 전했다. 전당대회 현장에서 열리는 유명 가수나 밴드의 공연을 보고 싶다면 의원이나 보좌관 모두 자기 주머니를 털어야 한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열리는 비치 보이스의 공연을 보려면 미리 25달러를 내야 한다.

전당대회 식단이 이처럼 빡빡해지고 참석자들의 행동에 제약이 많아진 것은 지난해 더욱 강화된 의회 윤리규정 때문이다. 규정에 따르면 의원과 보좌관들은 로비스트나 외부 단체로부터 식사나 공연 및 운동경기 티켓, 여행경비와 골프 비용 등을 일절 제공받을 수 없다. 특히 ‘이쑤시개 규정’으로 불리는 식사와 고급 요리에 관한 조항에 따르면 포크와 칼 등을 이용해 먹는 요리는 식사에 해당돼 금지되고, 이쑤시개 등을 이용해 서서 먹을 수 있는 ‘스탠딩 요리’는 허용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행사 관계자들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의회 윤리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파티나 각종 행사를 기획해야 하기 때문이다. 행사 준비보다 변호사와 보내는 시간이 더 길다고 푸념을 늘어놓을 정도다. 양당의 전당대회를 기획하고 있는 캐럴린 피치는 “모든 사람이 실수하지 않기 위해 (윤리 규정을) 한 장씩 넘겨가며 금지되는 것과 허용되는 것을 확인하는 등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악조건에서도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 기간 중 로비 단체와 기업 등이 마련하는 파티는 370여 건에 이른다. AT&T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씨티그룹 등 주요 기업이 후원한다. 나흘 동안 진행되는 민주당 전당대회에는 유명 가수 카니예 웨스트와 토니 베넷 등이 무대에 오르며 도박업계가 후원하는 영화배우인 벤 에플렉과의 포커 대회, 할리우드 쇼 등도 준비돼 있다. 규모에서 차이는 있지만 공화당 전당대회에도 재즈 브런치와 컨트리 음악 콘서트 등이 진행된다. 25명 이상이 참석하는 파티에 정치인들이 참석해 공짜 식사를 할 수 있는 등 의회 윤리규정에 허점도 많지만 구설에 오르내리기를 꺼리는 의원들이 몸을 사릴 것으로 보인다고 IHT는 전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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